책 쓰는 엔지니어
농업 자동화하는 이야기 본문
자동화의 필요성
농업 자동화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별다른 노력을 들여서 설득할 필요가 없을 것으로 생각한다. 겪어 본 사람은 바로 수긍할 것이고, 겪어보지 못 한 사람도 육체노동으로만 이루어진 산업에 대한 막연한 이미지가 있을 것이므로.
농업은 목축업보다도 오래된 산업이다. 과학기술의 태동보다도 그 역사가 길다. 바꿔 말하면, 별다른 기술적 기반 없이도 육체노동만으로도 굴릴 수는 있다는 뜻이다. 덕분에 경운기나 트랙터 같이 수십 년도 더 된 자동화 기기가 아직까지도 현역으로 뛰면서 효자 노릇을 톡톡히 하고 있다.
이 글에서는 농업에서의 자동화에 대한 개념을 가볍게 정리하고, 상상텃밭에서 심열을 기울이고 있는 자동화 방향에 대해 이야기해보려 한다.
자동화의 범주
학계나 업계의 분류는 잘 모르겠지만, 엔지니어로써 내 생각과 경험에 따르면 농업의 자동화는 크게 두 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 육체노동의 자동화와 정보의 자동화다.
육체노동의 자동화
육체노동의 자동화는 힘의 자동화와 반복 작업의 자동화로 나뉜다.
힘의 자동화는 말 그대로 인간의 근력을 대체하는 자동화 수단을 도입하는 것이다. 소를 이용해 쟁기질을 하거나, 물레방아를 이용해 곡식을 빻는 행위부터 경운기를 이용해 논을 갈아엎는 행위까지 모두 포함한다. 인간이 직접 손으로 할 수는 있지만 매우 고된 행위를 외부 수단으로 대체하는 것은 역사가 매우 깊다. 현재까지 가장 보편적으로 유통되는 대부분의 농기계가 힘의 자동화를 위한 장치다. 나는 힘의 자동화를 1세대 자동화로 분류한다. 가장 역사가 깊기 때문이다. 1세대 자동화 기기는 인체 내구도의 한계를 극복하도록 도와준다.
2세대 자동화는 반복작업의 자동화다. 때가 되면 물을 뿌려주는 스프링클러, 한 번에 수십 개의 씨앗을 심게 해 주는 파종기, 자동으로 마늘을 까 주는 기계 따위가 이 범주에 들어간다. 농업 관련 박람회에서 가장 많이 전시되는 품목이기도 하다. 2세대 자동화 기기는 번거로운 일을 대신해 준다.
농업 종사자 인구가 대부분 고령이다 보니 1세대 자동화 기기는 거의 대부분 농가를 먹여 살리는 밥줄이다. 시골에서는 경운기를 타고 국도를 질주하는 어르신들을 매우 쉽게 만나볼 수 있다. 허리 구부정한 할머니들이 백발을 휘날리며 트랙터를 조작하는 모습 또한 별로 신기한 광경이 아니다.
예외도 많지만 주로 1세대 자동화는 ‘농기계’라고 불리는 장치로 구현하는 경우가 많다. 2세대 자동화의 경우 수요가 발생함에 따라 각양각색의 제품들이 등장하고 잊혀졌는데, 이를 체계적으로 탑재한 온실을 ‘스마트팜’이라고 부른다.
정보의 자동화
농업분야의 정보는 접근이 어려우며 습득 난이도가 높다. 농업은 인류의 정착생활과 함께 시작되었으나 이를 체계적으로 연구하여 지식으로 전달하는 농학은 그 역사가 비교적 짧다. 심지어 책으로 배울 수 있는 방법론에는 한계가 있다. 이를테면 딸기를 재배하는 지식을 글로 배웠다고 하더라도 이를 현실에 있는 김 씨네 농장에서 구현하는 것은 다른 문제다. 강원도 철원에서 잘 먹히는 재배법을 대구시에서 시도한다면 제대로 굴러가지 않을 것이다.
농가마다, 또는 시설마다 사정이 다르고 환경이 다르다. 통일되지 않은 환경에서 개발을 하는 것과 같다. 심지어 모든 디바이스가 구동방식이 약간씩 다른 상황이라 생각해도 된다. 기후가 다르고 토양이 다르고 일조량이 다르다. 심지어 물의 성분조차 천차만별이다. 어떤 물은 금속 양이온이 많이 녹아있어서 재활용을 할 수록 나트륨이 축적되는 신기한 현상이 생기기도 한다. 정신이 아득해진다. 이런 물이 나오는 지역에 새로 유입된 사람은 원인을 알 수 없는 오만가지 문제에 시달리게 되는 것이다.
안타깝게도 대한민국의 대부분 현장에서는 부모 세대가 평생에 걸쳐 정보를 습득하고, 이를 자식 세대와 함께 10~20년 가량 함께 일하며 물려주고 있다. 지식의 이동 속도가 느린 것도 문제지만 더욱 심각한 문제는 폐쇄성에 있다.
입대 전 농업진흥청의 딸기 재배 교육을 받으러 갔었다. 어떤 분께서 손을 들고 질문을 했다.
“제가 어떤 제품을 사용했는데 잎이 누래지더니 시들었습니다.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요?” “다른 분들도 그 제품 때문에 피해를 보면 안 될테니, 제품명을 알려주시겠어요?”
절대 안 알려주더라. 대답을 못 듣게 되었음에도 얼버무리느라 정신이 없었다. 자기가 시행착오를 통해 쌓은 정보를 절대 남에게 공유하고 싶지 않다는 뜻이다. 오픈소스 정신과는 정 반대의 방식이다. 모든 분들이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지는 않겠지만 애석하게도 나는 이런 분들을 너무나도 많이 만나버려 이미 편견이 생겼다. 큰일이다.
반면 농업기술센터 등 정부 산하 기관에서는 정보전달에 적극적이다. 시들시들한 채소를 포기째 들고 다짜고짜 방문했는데도 박사님들께서 맞아주시고 상세하게 설명을 해 주셨다. 뉴비가 정보를 확보하려면 학계 분들의 도움을 받는 것이 최단기간이라는 결론이다. 하지만 농업은 실전인 걸 어떻게 하는가. 시행착오를 통해 조금씩 나은 방향으로 나아갈 수는 있다지만 한 번 실패를 겪을 때마다 투입 비용과 시간을 날리고 매출 0원을 기록해야 한다.
업계를 떠나거나 고령화, 사망 따위의 사유로 업계 종사자가 줄어들지만 그에 현저히 못 미치는 소수의 사람들만이 농업으로 유입되고 있는 이유가 다 있다.
나는 농업의 3세대 자동화인 정보의 자동화를 이렇게 정의한다.
“정보의 습득이나 활용에 대한 자동화.”
이를 또다시 네 가지로 분류해 봤다. 분류 기준은 기술적, 산업적 수요다. IT업계가 농업분야에 뛰어들어 활약할 수 있는 카테고리기도 하다. 농경지식의 자동화, 노하우의 자동화, 판단의 자동화, 예측의 자동화. 이 중 판단의 자동화와 예측의 자동화는 이름만 봐도 AI나 빅데이터를 적용하기 좋아 보이지 않는가? 공무원들이 좋아하는 용어인 ‘4차 산업 혁명 분야’로 또다시 세분화하였다. 천천히 설명해 보도록 하겠다.
농경지식의 자동화
농경지식의 자동화는 농업분야 도메인지식이 부족하더라도 비교적 용이하게 진입할 수 있다. 농업을 위한 지식과 관련된 자동화 방식이다. 농업과 관련된 지식을 제공하고, 공유하며, 검증하는 데이터베이스 따위를 생각할 수 있겠다.
이를테면 농촌진흥청에서 운영하는 농사로(http://nongsaro.go.kr/)가 좋은 예시다. 하나의 포털에서 농업과 관련된 거의 모든 지식을 습득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딸기’라고 검색하면 딸기 재배와 관련된 온갖 정보들이 쏟아진다. 농업 교과서의 딸기재배 챕터를 정독하는 것 보다 농사로의 검색결과가 더 알차다. 다만 정보가 정적이고 원론적이다. 특별한 환경에서만 발생하는 문제에 대처하는 방법은 찾기 곤란하다. 이런 정보는 경작지에서 가장 가까운 농업기술센터를 직접 방문하는것이 가장 정확하다는 한계가 있다.
거창하게 농경지식이라 표현했는데, 농자재나 비닐하우스 자재의 가격정보를 공유하는 서비스 또한 훌륭한 자동화의 범주에 들어갈 수 있다. 이런 서비스는 수요가 크지만 도메인 지식이 크게 필요하지 않기 때문에 좋은 납품처들만 파트너로 확보한다면 바로 서비스를 시작할 수 있을 것 같다.
그외에는 농경일지를 자동으로 관리해 주는 앱도 런칭이 되어 있고, 작물별 파종시기를 알려주는 서비스도 있다. 스마트팜과 연동하여 내부 환경이 작물생육에 부적절해질 경우 알람을 주거나 자동으로 시설을 제어해 주는 서비스도 있다. 비록 if문만으로도 구현 가능한 PID제어방식이긴 하지만 농경지식을 현실로 구현해 주는 훌륭한 서비스이며, 최근 수요와 공급이 가장 활발한 스마트농업 분야기도 하다.
노하우의 자동화
노하우의 자동화는 일반론적인 지식이 아니라 노하우의 범주에 포함되는 지식과 관련된 자동화다. 예를 들면 경상북도 안동시 남후면의 특정 농지의 토질에서만 먹히는 지식은 노하우의 영역이다. 또는 특정인만 알고있(다고 착각하는)는 특별한 방법론일수도 있다.
노하우의 자동화는 누군가의 노하우를 전달해 주는 서비스일수도 있지만, 새로 유입된 사람이 별다른 시행착오 없이 바로 농경에 정착할 수 있도록 장벽을 낮추어주는 서비스가 수요가 더 클 것이다.
자, 당신이 어느날 갑자기 강원도 삼척시에서 파프리카 농사를 지어야 한다고 생각해 보자. 무엇부터 해야 하겠는가? 이런 상황에 삼척시의 기후나 당신이의 경작지 토질에 맞는 가이드라인을 하나하나 내려주는 앱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노하우의 자동화는 산업의 진입장벽을 해소하는 수단이 될 수 있다. 다만 굉장히 제공하기가 어렵다. 전국 각지에 분포한 수요자에게 매 순간 개별적인 어드바이스를 해 주어야 한다.
그래서 노하우의 자동화는 크게 두 가지 전제조건 중 하나 이상이 달성될 때만 성립한다. 환경이 정밀하고 균일하게 유지되거나, 자동화 수단이 무지막지하게 똑똑하거나.
현재 스마트 농업 시장에는 전자를 달성하기 위한 제품들이 굉장히 많이 출시되어 있다. 아쿠아포닉스로 유명한 만나CEA의 CEA가 바로 정밀제어 농업(Controlled Environment Agriculture)이라는 뜻이고, CES2020에서 상을 받은 엔씽의 컨테이너 농장 또한 일종의 정밀 환경제어 시설이다.
정밀제어 시설은 연중 거의 일정한 환경을 제공하며, 설치위치에 관계없이 내부 환경의 균일성을 보장한다. 그러므로 전국 어디에 설치하던, 일년 내내 환경이 거의 균일하게 유지되므로 일종의 통일된 개발 환경을 보장받는 격이다. 고객들이 사용하는 디바이스와 모든 환경이 동일하다면 개발자 입장에서는 천국이 아닐까? 더 상세한 설명은 생략해도 될 것이다.
반면 나는 무지막지하게 똑똑한 자동화 수단을 개발하는 데 관심이 있다. 통제환경을 구축하기 위하여 디바이스 판매를 선행조건으로 해야 한다면 영업의 폭이 너무나도 좁아지기 때문이다. 우리가 개발한 스마트팜을 구매해주기까지 한다면 아주 좋지만, 이미 스마트팜을 보유하고 있는 고객에게도 SAAS 형태로 침투할 수 있다면 더 좋지 않을까?
판단과 예측의 자동화
그런 자동화를 달성하려면 필연적으로 판단과 예측의 자동화가 달성되어야 한다. 또한 농업 뿐 아니라 제어공학 쪽 도메인지식 또한 필요하다. 이를테면 농업 시설을 비선형 블랙박스 복잡계로 바라보면 아래와 같은 도식을 그릴 수 있다.
녹색 노드는 제어입력(action)이고 빨간색 노드는 시스템의 아웃풋(output)이다. 위 네트워크에서 갈색 노드는 관측이 가능한 시스템의 상태변수(state variable)이고 까만색은 관측이 불가능한 상태변수이다. 머리가 뾰족한 실선 화살표는 목표 노드를 강화하고, 머리가 둥근 실선 화살표는 목표 노드를 억제한다. 반면 점선 화살표는 미분방정식으로 그 관계가 정의되어 있어 어떤 경우에는 목표노드를 강화하지만, 어떤 때에는 반대로 억제하기도 한다.
복잡하다. 그래서 복잡계다. 관측 불가능한 변수가 존재한다. 그래서 블랙박스다. 따라서 온실은 일종의 비선형 복잡 블랙박스 시스템(Nonlinear, complex and black-boxed system)이다. 용어가 엄청나게 길어졌다.
농업인들이 저런 상관관계를 고려하면서 농사를 지을까? 정답만 이야기하자면 예스다. 다만 이를 한 번에 도식화해서 고려하지 않을 뿐이지. 그들의 경험과 노하우에는 이런 정보가 축적되어 있다. 이걸 정량적으로 자동화하려는 노력을 시도하니 머리가 아파오는 것이고. 환경제어는 비교적 간단한 문제다. 아래 도식을 살펴보자.
위 그림은 양액계를 표현한 것이다. 양액은 식물에게 영양분을 공급하기 위한 일종의 액체 형태의 비료다. 기술적으로 관측 가능한 이온은 총 4종류. 여기에 pH(산도)와 농도(EC)까지 총 6개의 변수를 관측할 수 있다. 사실상 대부분의 변수를 관측할 수 없는, 아주 훌륭한 블랙박스 시스템인 것이다. 마찬가지로 위 시스템 또한 완벽한 복잡계다. 그런데 이 정도면 양반이다. 양액과 식물이 상호작용하는 복잡계를 표현하면 아래 도식이 탄생한다.
“아니 농사 짓는데 이렇게까지 해야돼요?”
농사를 짓는 데에는 이렇게까지 할 필요가 없다. 하지만 노하우를 똑부러지게 자동화할 수 있는 스마트한 솔루션을 개발하려면 이렇게까지 해야 한다. 복잡계 모델을 “잘” 만들면 훌륭한 시뮬레이터가 된다. 물론 잘 만들기가 쉽지 않기는 하다. 하지만 도메인지식이 충분하다면 모델이 높은 정확도로 현상을 모사하도록 다듬을 수 있다.
이 모델을 돌리면 데이터가 무한정 쏟아진다.
여기까지 도달하면 이제는 빅데이터나 머신러닝이 맘껏 날뛸 차례가 된다. 갖가지 perturbation을 시스템에 가하면서 시뮬레이션을 하면 강건한(Robust) 제어 솔루션을 제작할 수도 있다. 모델을 백엔드에 탑재시켜 두고, IoT 시스템의 센서가 보내 준 값과 모델 예측값을 비교하면 센서값의 오류 내지 장치의 고장도 예상할 수 있다. 활용도가 그야말로 무궁무진한 것이다.
노하우의 자동화를 달성하기 위한 판단, 예측의 자동화는 이렇게 접근해서 풀어나가보고 있다. 반면 판단을 위한 판단, 예측을 위한 예측 역시 수요가 크다. 이를테면 비젼인식을 통한 질병예측, 수확시기 판단 따위의 어플리케이션 등이다.
농업 자동화 구현은 어떻게 하나
구현방법을 아주 간단하게 설명하자면 아래와 같다.
센서와 액츄에이터를 적절히 설치한다.
연산장치가 센서값을 받아 액츄에이터에 명령을 내린다.
매우 간단하다. 여느 IoT 시스템과 다를 게 없다. 위 설계가 마무리되면 여느 IoT 시스템과 마찬가지로 연산장치를 온프레미스로 하느냐 클라우드로 하느냐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간단하게는 아두이노나 라즈베리 파이만 가지고도 구현할 수 있을 것이고. 필요하다면 전용 보드를 만드는 것도 좋을 것이다. 상상텃밭은 마이크로소프트의 파트너 스타트업이라 Azure를 쓰고 있다. 써도 써도 줄어들 생각을 하지 않는 크레딧. 너무나도 사랑스럽다.
마치며
“농업 자동화”라는 토픽의 백엔드스러운 설명을 해 봤다. 보통 생각하는 것 보다는 농업 도메인지식이 부족해도 진입할 수 있고, 조금 더 높은 단계를 지향한다면 농업이 아니라 다른 도메인지식이 많이 필요하다. 머신러닝이 활개를 칠 여지도 넉넉하게 열려 있으며 평범한 IoT기법만 가지고도 큰 효용을 만들 수 있는 영역이기도 하다.
가장 진보한 기술로 가장 오래된 산업을.
상상텃밭의 비전이기도 하고, 내 개인적인 목표이기도 하다. 혼자 힘으로 해 나가기는 힘들 것 같으므로 아무쪼록 많은 엔지니어들이 농업분야에 발을 들이기를 바란다. 같은 팀으로 움직일 기회가 된다면 더 좋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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