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실패하는 스타트업 (12)
책 쓰는 엔지니어
낭중지추. 주머니(낭, 囊) 속(중, 中) 의(지, 之) 송곳(추, 錐) 주머니 속에 뾰족한 송곳을 넣으면, 별 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고 가만히 내버려 두어도 송곳이 주머니를 뚫고 튀어나와버릴 것이다. 아주 뛰어난 재능을 가진 사람은 저절로 남들의 눈에 띄게 된다는 의미의 사자성어다. 그런데 사실 낭중지추라는 말의 핵심은 튀어나온 송곳이 아니라 주머니가 터져버린다는 데 있는 것이 아닐까? 요즘 능력 출중한 사람이야 워낙 많으니까. 송곳이나 날붙이는 구멍을 뚫거나 무언가를 자르는 데 있어서 최고의 능력을 발휘한다. 그리고 대체하기가 쉽지 않다. 약한 재질의 주머니에도 상처를 입히지 않을 물건으로는 송곳처럼 작은 구멍을 내거나, 칼날처럼 무언가를 자르는 일을 수행하기 힘들다. 송곳을 품을 역량이 안 되는 주..
사람과 사람이 만나면 갈등이 벌어지기 마련이다. 함께하는 동기가 '행복'인 연애에 있어서도 갈등과 반목이 쉽게 일어날 수 있는데, 하물며 비즈니스적인 관계로 묶인 사이에서는 어련할까. 필자가 만나본 예비창업팀이나 조기 스타트업 팀들 중 사업적 실패를 이유로 터진 팀은 많지 않았다. 멤버 사이의 갈등으로 인해 팀이 공중분해된 경우는 많이 봤지만. 직장에서 갈등이 있거나 스트레스를 받더라도 공무원은 연금을 보면서 버틴다. 대기업은 연봉이 세서 버틴다. 마음의 상처를 돈으로 치유받을 수 있기 때문에 직원들이 이탈하지 않고 버티는 것이다. 그런데 작은 스타트업은 그럴 능력이 없잖은가. 대부분의 스타트업은 대기업만큼 높은 수준의 급여를 제공할 능력이 없다. 아직 영업이익이 충분치 않은 초기 팀들은 더더욱 그럴 것..
노동청에서는 최저임금이 아주 중요한 키워드다. 최저임금 미준수는 아주 훌륭한 처벌사유다. 2019년 기준 최저임금은 시급 8,350원이며 월급 1,745,150원이다. 근로는 일정 시간동안 용역을 제공하고 그 대가로 사업주로부터 임금을 지급받는 행위다. 필자가 만나본 사업주들은 근로계약을 '연봉을 지불하여 근로자를 쇼핑하는 것'으로 이해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마치 온라인으로 신발을 살 때에 조금이라도 낮은 가격에 좋은 품질의 물건을 구매하기 위하여 노력하는 것처럼, 적절한 인재를 최저가로 확보하고싶어 하는 것이다. 근로라는 것은 근로자의 시간과 체력을 소모하여야만 달성할 수 있는 것이라는 점에서 사업주에게만 일방적으로 선택권이 존재하지는 않는다. 구직자는 취업시장에서 자신이 가진 가치를 금전적인 수치로..
생명과학을 공부하다 보면 독일의 화학자인 유스투스 폰 리비히의 이름을 한 번은 접하게 된다. 리비히는 아버지가 운영하는 공장에서 화학 물질을 몰래 가져와 화약을 만들어 학교에서 폭발시킨 적도 있다고 한다. 그는 일생동안 굉장히 많은 업적을 남긴 천재다. 리비히가 제안한 많은 이론 중에서 일반인들에게 가장 널리 알려진 것은 '리비히의 최소율 법칙'일 것이다. 식물이 성장하는 데 n가지 영양소가 필요하다고 할 때, 그중 가장 적게 존재하는 영양소가 식물의 생장에 발목을 잡을 수 있다는 이야기다. 이를 많은 사람들이 더욱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Dobenecks은 그림을 그렸다. 물통에 물을 아무리 담고 싶어도 가장 낮은 나무판 때문에 물을 담을 수 있는 상한선이 결정되어버린다는 것이다. 이후 많은 사람들이 ..
이 글은 KAIST 교양필수과목 "리더십 3 : 리스크 없는 학생 창업" 과목의 3주 차 렉쳐 노트입니다. 구술 강의를 녹취한 것으로 비문이 있을 수 있습니다. 법. 법이란 무엇일까요. 우리는 왜 법률의 구속을 당해야 할까요. 오늘 배워볼 이야기는 학생 여러분들께 리걸마인드를 조금이라도 맛 보여드리고 싶어 준비해 봤습니다. 여러분들이 졸업해서 사회로 나가게 되면 아무래도 지금과는 많이 다른 종류의 관계를 형성하게 될 거예요. 책임도 늘어날 것이고, 할 수 있는 선택의 폭도 넓어지게 될 것입니다. 그러다 보면 다양한 종류의 갈등과 사고에 휘말릴 수 있겠지요. 교통사고를 예로 들어 볼까요? 여러분이 아무리 주의를 기울이고 신호를 잘 지켜도 상대 운전자가 정신을 살짝 놓으면 사고가 날 수 있죠. 이런 상황에서..
농업 관련 특허는 농업인이 아이디어를 낸 경우가 많겠죠. 농대 교수가 출원하는 경우도 있을 것이고. 그런데 수경재배 장치 관련 특허를 둘러보면 유독 다른 분야에 비해 무용지물인 특허가 많이 보입니다. 예를 들면 베란다 공간활용도를 높일 수 있는 방안을 도입해 가정용 수경재배기의 문제를 해결한 모 특허는 '별도로 설치된 타이머'라는 부품을 빼버리면 회피가 가능합니다. 식물 한 포기 한 포기에 직접 양액을 공급하면서도 각각의 수위조절이 가능한 모 수경재배기법 특허는 '인삼'에만 한정되어 있죠. 이런 식으로 특정 '작물'로 범위를 한정짓는 내용이 청구항 1항부터 떡 들어가 있는 경우가 많아요. 엘지전자가 출원인인 특허들은 이런 문제가 거의 없거든요. 유능한 변리사가 신경써서 만든 작업물에는 이런 경향이 덜하다..
바이럴(viral) 마케팅. 사람들이 공감할만한 컨텐츠를 확산시키는 마케팅 기법의 일종으로, 정보가 지속적으로 재생산되며 전염되는 것이 마치 바이러스가 전염되는 것 같다고 하여 이러한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필자가 이 용어를 처음으로 접한 것이 언제인지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하지만 바이럴마케팅의 사례를 공부할 때 처음 봤던 자료는 아직도 잊히지가 않는다. 푸푸리의 'Girls don't poop'이라는 영상이 바로 그것이다. 이 2분짜리 영상을 몇 년이 지난 지금까지 잊지 못 하는 데에는 모두 이유가 있다. 푸푸리 한글 자막 영상 첫 씬부터 영상미가 아주 강력하다. 무채색 화장실 문이 벌컥 열리더니 레이스까지 달린 파란색 원피스를 입고 풀메이크업을 한 금발의 백인여성이 등장한다. 그리고 그녀가 등장하자..
기술 부채는 일종의 빚이다. 빚이란 "미래의 나"의 등골에 빨대를 꽂아 "현재의 나"의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이라는 점에서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다. 한번 스타트업이 자주 겪을 만한 상황에 빗대어 보자. 당신은 스타트업의 CEO다. 올해 초에 정부지원사업으로 돈을 억 단위로 타서 썼다. 그래서 성과보고를 위해 올해 안에 앱을 론칭하기는 해야 하는 상황인데 아직 제품의 성능이 좋지 않다. 향후 장기간 고장 나지 않고, 좋은 성능을 보여주려면 반년 가량 밑 작업이 필요하지만, 당장 2주 안에 앱을 론칭해야 한다. 이런 상황에서 많은 CEO들은 성능이 많이 떨어지거나 불안정하더라도 일단 '작동은 되는' 앱을 그럴싸하게 만들어서 론칭을 해야 한다고 판단한다. 안 그러면 억 단위의 정부지원금을 환수당할 수도 있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