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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현씨 본부에 뭐 보낸 거 있어요?"
지난주 금요일. KT 시위대와의 충돌을 대비해 경비를 서는 중 서무님이 3층에서 헐레벌떡 내려오셨다. 본부에서 왜 전화가 왔는가. 지방청 공무원에게는 굉장히 낯설고 궁금한 일이었을 것이다. 당사자인 필자도 당황스러운데 어련할까.
한번 실없는 생각을 해봤다. 공익근무요원을 군대에 비유하자면 담당공무원은 소대장, 소장님은 중대장, 지청장님은 대대장쯤 될 것 같다. 안동지청의 모체인 대구청 청장님은 사단장쯤 될까? 필자가 복무를 시작한 지 반년 정도 되었으니 육군이었다면 일병 계급장을 달고 있었을 것이다. 지청장님과 본부 사무관이 급수가 비슷할 것이니 육군본부 또는 연대 소속이며 대대장과 계급이 비슷한 장교가 다이렉트로 소대에 전화를 걸어 "거기 xxx일병 좀 바꿔주십시오." 하고 요청한 것과 비슷한 상황이 아닌가?
그러니까, 공무원들은 일병 나부랭이가 직속상관들 다 제치고 육군본부에 마음의 편지라도 보낸 상황으로 이해한 것 같았다. 군필자들은 이게 얼마나 등골이 오싹해지는 상황인지 이해할 것이다.
"뒤집어질만하네.."
"네?"
"아 아니에요. 본부에서 요청해서 이메일 보낸 거 있어요. 혹시 어떤 분이세요?"
필자가 잘못을 저질러서 본부에서 연락을 준 게 아니라는 인상을 주기 위해 애썼다. 연락 주신 분의 성함과 전화번호가 적힌 포스트잇을 건네받고 잠시 망설였다. 지금 시위가 진행 중이라 많이 시끄러운데 지금 전화드리는 게 나을까? 아니면 좀 더 기다려 볼까? 시위도 평화적으로 진행되고 있는데 뭐 괜찮겠다는 마음에 전화를 걸었다.
전날 통화했던 분과는 다른 분이었다. 브런치 글을 재밌게 봤으며, 이메일을 돌려 봤다고 한다. OCR은 장기간 준비를 해 왔으며 마침 그날 바로 발주를 넣었다고 한다.
한번 같이 만나 논의하는 자리를 만들고 싶어 연락을 주셨다고 한다. 혹시 세종시에 있는 노동부 본청으로 출장을 올 수 있는지 여쭤보시기에 필자는 월요일에라도 당장 다녀올 수 있으니 지청과 협의만 원만하게 진행해 주십사 부탁드렸다.
"아 그런데 혹시 출장비는 나오나요?"
"네 물론이죠 나올 겁니다. 혹시 복무 관리하시는 담당공무원님이 누구신가요?"
함께 경비를 서고 있던 담당공무원님께도 상황을 전달해 드렸다.
"본부에서 자문을 요청해서 출장을 다녀와야 될 것 같아요."
"자문? 아 너 전에 ip 차단 먹은 거 그거 기록 보고 부르는 건가? 나도 가야 돼?"
공익 한 명 출장 보내는 게 그렇게 여러 사람 손이 가는 일인 지 그때는 몰랐다.
"공짜로 일 하면 안 되지. 대가는 받아야지."
"어.. 공익이라서 외주를 받거나 하는 건 불법인 것 같아요. 경제활동을 하면 안 되다 보니.."
"그러면 이걸 네가 만들어서 전국 노동청에 납품하면 금액이 얼마나 돼?"
"글쎄요? 납품까지 하면.. 2, 30억 할까요? 잘 모르겠습니다."
"음. 알겠다. 너 본부에서 근무지 옮기라고 하면 어떡할래?"
"공익 월급으로는 타지 살이 못 한다고 답변드리려고요."
"알겠다. 잘 다녀오렴."
평소와 같이 4층 창고에서 화장실용 휴지 박스를 꺼내서 1층에 내려보내 주고, 택배박스를 창고에 집어넣고 있었다. 그러는 사이 본부에서 공문도 만들어서 내려보내고 안동청에서도 이런저런 절차를 밟았던 것 같다. 그런데 문제가 하나 생겼다.
"병현씨, 혹시 차 끌고 갈 거야?"
"그럴 생각입니다."
"그런데 문제가 있어. 공익은 교통비를 실비로 지급하게 되어 있어서 이게 규정이 되게 이상하거든?"
"맞아요. 아마 왕복 고속버스 티켓비만큼만 지급이 될 수도 있어요."
"차를 가져가면 실비 계산이 어떻게 들어가지? 출장 가는 날의 기름값이랑 차 연비랑 이동거리 다 구해서 계산해야 하나?"
"글쎄요? 톨비는 확실히 지원이 될 텐데..."
그 모습을 지켜보던 7급 주무관님이 한 마디 거드신다.
"출장 가면 일비 나오잖아? 그러면 그걸로 밥 사 먹고 기름값 메꿔도 조금 남지 않아?"
"규정상 공익은 일비가 없어서요."
"어? 정말이야?"
"약간 적자 봐도 되니까 자차 몰고 다녀올게요."
"공무원이랑 같이 가면 비용을 공무원 앞으로 처리하면 돼서 적자는 안 볼 텐데, 같이 가 줄까?"
"어.. 아니요 괜찮습니다 혼자 다녀올게요."
애초에 병무청에서는 공익이 타지로 출장 가는 사례 자체를 생각을 못 한 것인지 아니면 예산이 없어서 그러는지. 어쩌겠는가. 그리고 적자 보더라도 혼자 움직이는 게 편하다.
사정을 어렴풋이 전해 들은 주무관님들이 호기심 반, 걱정 반으로 많이들 찾아오셨다. 그들의 우려는 아래와 같이 요약된다.
1. 절대로 열정 페이를 하지 마라. 공익 월급으로 힘든 거 부려먹으려고 하면 병무청에 신고해라.
2. 본부에서 너를 데려가고 싶어 하면 어떻게 할 거냐?
공익이라서 외주를 못 받을테니 본인이 퇴직하고 회사를 차려 줄 테니 본인 이름으로 외주를 받자고 농담을 던지는 주무관님도 계셨다. 필자는 이쁨 받는 공익 쪽에 속했던 것 같다.
아무튼. 뜻밖의 사건이 터진 날에도 어김없이 노동청에는 퇴근시간이 찾아왔다.
다음 주에 출근하면 꼭 썰을 들려 달라는 인사를 받으며 퇴청했다. 그 길로 필자는 부산으로 내려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