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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딩하는 공익 국내도서 저자 : 반병현 출판 : 세창미디어 2020.04.27 상세보기

 

  브런치는 훌륭한 플랫폼이다. 하지만 한 가지 불만이 있다면 블랙리스트 기능이 없다는 점이다. 그리고 악플러를 신고해도 처리가 너무 느리다.

  며칠 전부터 악플러 한 명이 필자의 브런치 게시물에 동일한 악플을 도배했다.
  

12월 31일 브런치 알람 캡처 (1)

 

 

12월 31일 브런치 알람 캡처 (2)

 

 

12월 31일 브런치 알람 캡처 (3)

 

  저 쿠앙이라는 유저는 2019년 마지막 날에만 100개가 넘는 악플을 필자의 브런치 게시물에 달았다. 아주 골고루 돌아다니면서 말이다. 이 사람이 보통 악질이 아닌 것이, 그냥 악플만 남긴 것이 아니었다.

 

악플을 다는 형태

 

  저 유저는 꼭 필자의 다른 독자를 댓글에 태그해서 악플을 달았다. 죄질이 굉장히 나쁘다. 도저히 용서할 수가 없었다.

 

2014년, 고소장 11통

 

  필자는 법적조치를 취하는 데 거리낌이 없다. 법률을 배운 사람으로써, 쌓은 지식을 활용해 스스로를 지키는 것은 당연한 행동이라고 생각한다. 막간을 이용해 필자가 쓴 책 광고를 살짝만 하겠다.

 

빨간색 베스트셀러 딱지를 보라

 

 

  애석하게도 이 책은 물류창고가 다 타버려서 더이상 실물재고를 구할 수가 없다. E북으로만 구할 수 있다. 흑흑. 하지만 이 책은 실물재고가 있어서 구할 수 있지롱!

 

실전 민사소송법

 

 

  여튼 일단 저 사용자가 자기가 단 악플을 지우지 못하도록 조치를 취했다. 저 작자가 댓글을 단 게시물 몇 건을 비공개 처리한 것이다. 이렇게 하면 댓글을 작성한 사람이 본인의 댓글에 접근할 수 없으므로, 댓글을 삭제할 수 없다. 증거를 인멸할 방법을 없애버렸으니 이제 마음 편하게 법적조치를 취할 수 있다. 짬에서 나오는 바이브다. 다만 필자가 아끼는 글들을 비공개로 돌려야 했다는 사실이 가슴아프다. 나를 욕하는건 참아도 내 작품을 더럽히는 건 참을 수 없어!

 

변호사 상담 받기 쉬워진 세상이다

 

  변호사 두 명에게 자문도 구했다. 앱으로 예약하면 당일에 바로 전화상담이 가능하니 아주 세상이 좋아졌다. 저 악플러를 내 손으로 직접 처리하려면 휴가를 쓰고 검찰에 고소장을 접수해야 한다. 합의를 보기 위해 필자한테 연락도 올 것이고 많은 것이 귀찮다.
  하지만 변호사를 선임하면 상대방에게 극심한 심적 고통을 안겨줄 수 있으며, 추후 민사까지 걸어서 금전적 배상은 물론 변호사 비용 일부까지 뜯어낼 수 있다. 변호사를 활용해 형사고소까지만 진행하면 330만원, 민사까지 이어서 하면 550만원 선이다. 부가세 포함이다. 필자는 평일에 휴가를 쓰기가 아까우니 소집해제 후 변호사를 선임할까 생각중이다.
  일단 그건 4월 말 이후의 이야기이고. 당장 필자가 이 사람에게 대응할 만한 적당한 방법이 없을까 조금 고민을 해 봤다. 우선 이 악플러는 허술한 부분이 있었다. 카카오 브런치 아이디를 조회해 보니, 성균관대학교 동문 게시판에 작성한 게시물이 그대로 검색되는 것이 아닌가?

 

이 악플러는 2010년 겨울에 사랑니를 뽑았다

 

  이외에 다른 댓글들도 몇 가지 조회가 되었다. 이 사람의 페르소나가 어느정도 특정됐다. 필자보다 나이가 많으며, 높은 확률로 30대일 것이다. 또한 성균관대를 나왔을 정도면 어느정도 스스로에게 건 기대나 자부심도 컸을 것으로 생각한다.
  또 얼마전에 닥터프로스트라는 심리학 웹툰에서 이런 명대사가 등장했다. "누군가를 알고 싶은 것과 미워하는 것은 동시에 존재할 수 없다." 저 악플러는 나에 대해 굉장히 관심이 많다. 즉, 필자를 미워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일종의 왜곡된 동경심이 문제의 원인이 아닐까.
  필자가 이렇게까지 저 사람이 누구인지 알려고 했던 것으로 미루어보아 필자 또한 저 사람을 미워하지 않았던 것 같다. 처음에는 저 사람이 필자를 질투하다 못해 증오하게 되었다고 생각했다. 일종의 열등감이 혐오로 바뀌니 날카롭게 벼려진 사례라 생각했다. 그런데 이제는 불쌍하다. 필자가 가진 것들이 그의 삶을 몹시도 비참하게 만들었나보다.
  여기까지 분석한 뒤 저 사람의 심리를 추측해 봤다. 명문대 입학과 함께 어린 시절 주변의 기대를 받으며 자기 자신에 대한 자부심을 키워나갔을 것이다. 하지만 현재 저 사람은 마땅한 성과를 이루지 못 한 것 같다. 이를테면 고시낭인이나 취업이 안 되는 경우가 아닐까? 자존감이 박살난 것 하나는 틀림없다. 그러니 자기보다 어린 공익 놈에게 동경심을 품었겠지.
  게다가 몇 시간씩 새로고침을 눌러가며 악플을 달 정도면 굉장히 시간이 넉넉한 사람이라는 뜻이다. 그것도 연말과 연 초에 말이다. 보통은 연말과 연초에 약속이 많지 않은가? 저 악플러는 인간관계가 매우 협소하거나 주변인들에게 버림받은 사람이라는 뜻이다. 이거 원, 불쌍한 사람이네.
  저 사람이 필자의 브런치에 악플을 달기 위해 투자하는 시간과 노력은 보통이 아니다. 필자의 브런치에는 벌써 게시물이 160개 이상 게시되어 있다. 이 게시물을 하나씩 옮겨다니며, 정성스럽게 필자의 다른 독자들의 아이디를 하나씩 태그하며 악플을 달다니. 이 정도면 증오가 아니라 사랑이요 동경이다.
  테스트를 해 봤다.
  저 사람이 작성한 댓글을 지워봤다. 조금 지나서 다시 댓글이 달렸다. 이걸 또 지웠다. 또 댓글이 달렸다.
  어떤 형태의 망가진 인간인지는 잘 파악했으나 필자의 개인적인 공간에 악플이 남아있는 것을 원하지 않았고, 다른 독자들을 태그하는 행태는 도저히 용서할 수 없는 일이므로 그에게 최대한의 심리적 고통을 선사해 주기로 결심했다. 아니, 애초에 형법을 위반한 범죄자다. 필자는 범죄자 따위의 사정을 고려해 주고 싶은 생각이 전혀 없다.
  아마 저 사람은 필자를 깎아내리려는 의도로 댓글을 작성하면서, 동시에 "나도 좀 봐주세요. 나 여기 살아 있어요! 내 흔적을 지우지 말아주세요!" 하는 절박한 메시지를 보내고 있었던 것이 아닐까? 이 사람의 댓글이 올라오는 족족 삭제해버리는 것으로 첫 번째 응징을 가하기로 했다. 눈이 시뻘개지도록 브런치를 붙잡고 댓글을 도배하게 될 것이다. 일종의 스키너박스를 만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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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로젝트명 사드(THAAD)를 준비했다. 미사일이 날아오면 요격하는 사드처럼, 브런치에 악플이 달리면 요격해 버리는 자동화 소프트웨어다. 일반인을 위한 업무 자동화 매거진에서 몇 번 사용했던 셀레니움을 사용했다.  

사드 요격 성공화면

 

  사드는 필자의 브런치 게시물들을 이리저리 탐색하면서 '쿠앙'이라는 아이디가 발견되거나 비슷한 패턴의 악플이 등장하면 그대로 그 악플을 삭제해 주는 자동화 소프트웨어다. 브런치의 신고 기능을 아무리 사용해 봐야 저 악플러가 재제를 당하지 않길래 자력구제에 나섰다.
  혹시 악플로 고민 중인 브런치 작가분들이 계시다면 댓글을 달아주시기 바란다. 상세한 사용방법을 따로 적어 드리겠다. 아주 잘 돌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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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만드는 과정에서 웃지 못 할 에피소드도 있었다.

자아분열의 현장

 

  악플 지우개를 테스트하려면 악플이 있어야 하지 않은가? 그래서 필자의 브런치에 필자가 직접 악플을 달아가며 테스트를 해야 했다. 스크립트가 완성된 후에는 몇 가지 테스트를 위해 또 사드를 가동시켜 둔 채로 필자의 브런치에 필자가 직접 악플 몇 개를 달았다. 자아분열의 현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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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키너박스 실험은 대성공이었다.
  "네가 댓글을 지우면 나는 댓글을 다시 적으면 그만이다. 내 악플로 네가 이뤄 둔 명성을 부숴버리겠다."
  굉장히 간단하고 명료한 동기부여다. 저 사람은 간단한 심리트릭에 빠져, 자신의 악플이 컴퓨터에 의해 자동으로 지워지고 있다는 사실도 모른 채 새벽 두시 반에도 악플을 수십개씩 남겼다. 잠까지 줄여가며 컴퓨터와 싸운 것이다. 일 주일 가량이나 말이다. 어떤가, 코딩으로는 현세에 연옥을 만들어 사람을 가둬버릴 수도 있다. 파이썬과 함께라면 못 할 것은 없다는 마음가짐만 있으면 못 할 것은 없다.
  6일째 되던 날 밤, 결국 저 악플러는 독자님의 '신고할게요' 한 마디에 아이디를 삭제하고 도망쳐버렸다. 약간 아쉽기도 하다. 조금 더 오랜 시간동안 저 악플러에게 왜곡된 보상을 부여하고 싶었다. 부디 일주일간 현실 세계에서는 충족시킬 수 없는 만족감과 달성감을 충분히 누렸기를 바란다. 그래야 당신의 현실이 더욱 비참하고 아프게 느껴질테니 말이다.

 

결말

  여튼 매우 작은 적대감에 도망을 치다니. 역시 예상을 벗어나지 못한다. 자존감이 무너지고 철이 덜 든 사람은 불안하면 악수를 둔다. 덕분에 쿠앙씨는 기존에 본인이 작성한 악플을 삭제할 권한이 사라졌다. 증거가 사라질 염려가 사라졌으니 느긋하게 변호사를 고르면서 전역을 기다리면 될 것이다.
  

사드가 댓글을 삭제하면 또 댓글을 달았다

 

  위 사진을 잘 보자. 쿠앙씨가 같은 게시물에 연속으로 여러 번 댓글을 단 흔적이 보인다. 이게 정말이지 불쌍하고 슬픈 행동이다.

  1. 댓글을 단다.

  2. 댓글이 혹시 삭제당하지는 않았을까 불안해하며 새로고침을 한다.

  3. 그 사이 사드 때문에 댓글이 자동으로 삭제된 것을 보고 마음의 상처를 받는다.

  4. 다시 댓글을 단다.

  5. 그런데 그게 또 삭제당했을까봐 새로고침을 한다. (이하 반복)

  하루종일 새로고침을 눌러 가며 댓글창을 붙들고 있었을 저 악플러가 불쌍하다. 저 사람은 필자가 열을 올리면서 댓글을 하나하나 삭제하고 있을 거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걸 어쩌나. 그거 사람 아니고 컴퓨터였어.
  12월 31일부터 1월 5일까지. 총 6일에 걸쳐 혼자 스트레스를 받고, 희열을 느끼면서 허공에 주먹질을 하게 만들었다. 업무 자동화가 이렇게 유용하다. 강연 소재 늘었다!
 이 세상에 당신같은 사람에게 감정과 시간을 소모해가며 진지하게 상대해 줄 사람 따위는 없다. 만약 그런 사람이 이 세상에 한 명쯤 있다면 당신을 기소할 담당검사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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