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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에 대한 복잡했던 심정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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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예술이라는 분야를 좋아한다. 마냥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작품을 즐기는 데에 대한 나름의 철학이 있다.
필자가 예술 작품을 즐기는 방법은 굉장히 단순하다. 어떤 작품을 접하고 감상하며 필자의 마음속에 어떠한 감동이나 감정의 변화가 차오르기를 기다린다. 필자는 이러한 감정의 동요를 일으키는 능력을 '아름다움'이라고 정의한다. 그리고 그것을 조금씩 곱씹어 보며 즐거워한다. 필자에게 예술 작품은 일종의 영감을 담고 있는 보물창고와 같은 존재이다.
작품에 담긴 제작자의 의도를 전혀 이해하지 못해도 상관없다고 생각한다. 작가의 의도와 완전히 반대되는 방향이라도 좋으니 필자의 마음속에 동요가 일었다면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어떤 때에는 작품을 전체적으로 감상하며 즐거워하고, 어떤 때에는 그를 구현하는 데 들어간 기술적 면모에 경이로움을 느끼며 행복해한다.
이러한 철학을 고수하다 보면 쓸데없이 넓은 심미안이 트인다. 에너지가 넘치는 날이면 감수성 또한 풍부해지는 편이고 이런 날이면 별의별 게 다 아름답게 보인다. 하늘이, 구름이, 길 가에 놓여 있는 쓰레기통이 한 마디씩 영감을 툭 툭 던져 준다. 그러다 더 이상 쌓아두는 것이 곤란할 만큼 감정이 커지면 표현을 해야 마음이 편안해진다. 아래와 같이 말이다.
필자의 경우 이러한 감정은 대부분 일시적이고, 지극히 개인적인 것이므로 주변의 공감을 사는 것이 쉽지 않은 일이다. "이러한 감수성을 혼자서 간직하는 것이 아니라, 용기를 내어 타인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사람"을 예술가라고 부르는 것이 아닐까. 무슨 학위가 있거나, 어느 대회에 입상했거나 하는 것은 전혀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예술가에 대한 정의가 이리도 너그럽다 보니 자연스레 예술에 대한 정의 또한 경계가 모호하고 넓을 수밖에 없다.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 어떤 현대미술가는 "예술가가 어떠한 대상을 작품이라 정의하는 순간부터 그것은 예술이라 부를 수 있다."라고 정의했다. 굉장히 관대하고 넓은 정의다. 이 정의에 따르면 변기통에 싸인을 한 마르셸 뒤샹의 작품이나, 백지에 숯 연기를 쬐어 얼룩을 그리는 등 일반인이 이해하기 난해한 현대미술의 여러 시도들이 예술이라는 범주로 들어올 수 있게 된다.
그런데 필자의 정의는 이것과는 조금 다르다. 예술을 창작자가 아니라 관람자의 시각에서 정의한다. "누군가가 무언가로부터 감정의 동요를 느꼈다면 그것이 바로 예술"이라고 생각한다. 이 철학에 따르면 안타깝지만 많은 예술가의 작품이 누군가에게는 예술이 아닌 것으로 전락해 버릴 수도 있고, 또 남들은 전혀 작품이라 생각지 않는 엉뚱한 대상을 두고 아름다움을 느끼는 이상한 사람이 생길 수도 있다. 이를테면 보도블록을 보고 아름다움을 느낀다거나.
필자에게는 감정을 표현하고, 공감받고자 하는 강한 욕구가 내재되어 있다. 사실 이러한 욕구에서부터 시작된 행위를 평생 해 왔겠지만, 이 사실을 자각하고 인정하게 된 것은 불과 두 달 전이다. 청와대의 초청으로 자문을 위해 서울을 가게 되었던 바로 그 무렵이다.
당시 뜬금없이 청와대에서 지방관청의 격오지 지청으로 직접 연락을 주어 필자와 센터 소장님을 호출했다. 소장님께서는 필자가 어떤 글을 써 왔는지 전혀 모르고 계시다가 갑자기 연락을 받아 몹시 당황하셨다. 청와대 방문 하루 전 필자가 브런치에 썼던 코딩하는 공익 시리즈를 인쇄해 보여드리게 되었다.
"이렇게 글로써 자신을 표현하려는 시도를 하고, 그게 이렇게 두껍게 쌓였다는 건 네가 감수성이 아주 풍부한 사람이라는 뜻 아닐까."
망치에 머리를 얻어맞은 것 같은 기분이었다. 한 번도 그런 사실을 의식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브런치에 수 십 편의 글을 쓰면서도 이게 나를 표현하기 위한 행위였다는 생각을 전혀 해 본 적이 없었다. 필자에게 글이란 재미있는 놀이였기 때문에.
만약 필자의 글이 감수성을 전달하기 위한 수단이었다면 이를 통해 감정의 동요를 느낀 독자가 있을 것이다. 그것이 통쾌함이건 불쾌함이건 말이다. 그리고 이는 필자의 철학에 따르면 예술에 해당한다. 그렇다, 필자는 의식하지 못 한 사이 예술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쓸데없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나름 예술을 즐기는 데에 대한 철학은 확고했지만 이를 생산하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깊이 있는 고찰을 해 본 적이 없었다. 그전까지 필자는 그저 '독자들이 좋아하는 글은 좋은 글!'이라는 생각만 하고 있었는데 이런 마음가짐이 적절한지 갑자기 혼란스러웠다.
필자도 레바와 비슷한 고민을 했다. 많은 사람들이 필자를 '작가님'이라 불러 주고 있었다. 원래는 별 생각 없이, 글을 쓰는 입장이니 작가라 불리는가 보다 하면서 이런 호칭을 받아들였는데 이제는 마음이 너무 무거웠다. 누군가 필자를 '작가님'이라 부르며 페이스북 메시지를 보내왔다. 숨이 턱 막혔다. 낭떠러지에 서 있는 기분 같기도 하고. 조금 더 책임감 있게 글을 써야 하는가? 경솔한 마음가짐으로 글을 수 십 편을 올려 왔는데 이래도 되는 건가?
슬럼프가 찾아왔다. 며칠간 글을 쉬고 마음을 좀 정리해 보기로 했다. 그런데 그것 도 며칠 못 갔다. 뭔가 의무감이 들기도 하고 밥 먹듯 당연히 해 오던 것을 안 하고 있자니 불안하기도 해서 그냥 글을 쓰면서 마음 정리를 하기로 했다. 매거진을 새로 만들고 두 편의 글을 썼다. 마음 정리는 개뿔, 그냥 글 쓰니까 즐겁기만 했다.
마음이 무겁고 고민이 해결되지 못한 상태다 보니 머리가 복잡했다. 코딩하는 공익 출간 방향을 정하기 위해 세창출판사 홍순용 편집자님과 카톡을 주고받을 때에도 자연스레 질문이 자꾸 길어지고 너무 자세하게 물어보게 되더라. 스크린샷을 보면 필자가 얼마나 세세한 부분까지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었는지 어느 정도 드러날 것이다.
그런데 답변이 참 걸작이었다.
"재미있으면 장땡이에요."
그래 맞는 말이다. 정작 아무도 예술이라 생각지 않는 곳에서도 아름다움을 발견하며 즐거워하던 녀석이, 예술에는 학위나 수상경력이 중요치 않다고 떠들고 다니던 사람이 예술은 아무나 할 수 없는 것이라는 거만한 편견에 쌓여 있었던 것이다. 이렇게 4일간의 짧은 슬럼프가 막을 내렸다.
그간 예술을 즐거워 하는 사람으로써 이대한 독자적인 정의를 했고, 거기에 충실해왔지만 예술가에 대한 정의는 제삼자의 이야기처럼 했던 게 문제였다. 필자는 앞으로 예술가를 이렇게 정의하기로 했다.
"자신이 가진 감정을 표현하고자 하는 욕구로써 타인과 소통하는 사람."
여전히 두리뭉실하고 넓은 정의다. 하지만 마음이 편안하다.
"나는 예술가다."
이제야 필자는 스스로를 예술가라고 정의할 수 있게 되었다. 글은 소통의 수단이며 글을 쓰는 이유는 내 감정을 표현하기 위함이다.
"비록 글쓰기와 관련된 정규교육을 받지 못하여 다른 전문가들에 비해서 글의 깊이가 얕을 수는 있지만, 그렇다고 내 감수성이 더 얕다는 뜻은 아니다. 나만의 색깔을 담아 나를 표현한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본업이 아니라 취미지만, 취미로 남들을 감동시킬 수 있다면 그게 더 대단한거 아냐?"
이게 작년 연말에 있었던 일이다. 2018년에 가장 크게 성장한 부분이 바로 이런 마음가짐이 아닐까 생각한다. 덕분에 이제는 좀 더 솔직하고 자연스럽게 스스로를 표현하고 있다. 노래에 대한 생각도 조금 달라졌고, 친구와 랩도 만들었다. 올해에는 글뿐만 아니라 좀 더 다양한 방식으로 스스로를 표현하는 연습을 해 보려고 한다.
나를 꺼내어 놓는 연습을 하다 보면 내 속에 무엇이 들어 있는지를 더 잘 알 수 있을 것이고, 더욱 좋은 글을 쓰는 작가로 성장할 수 있을 것이다. 내년에 내어 놓을 책들이 벌써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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