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쓰는 엔지니어
법학 개론의 개론의 개론 본문
이 글은 KAIST 교양필수과목 "리더십 3 : 리스크 없는 학생 창업" 과목의 3주 차 렉쳐 노트입니다. 구술 강의를 녹취한 것으로 비문이 있을 수 있습니다.
법. 법이란 무엇일까요. 우리는 왜 법률의 구속을 당해야 할까요. 오늘 배워볼 이야기는 학생 여러분들께 리걸마인드를 조금이라도 맛 보여드리고 싶어 준비해 봤습니다.
여러분들이 졸업해서 사회로 나가게 되면 아무래도 지금과는 많이 다른 종류의 관계를 형성하게 될 거예요. 책임도 늘어날 것이고, 할 수 있는 선택의 폭도 넓어지게 될 것입니다. 그러다 보면 다양한 종류의 갈등과 사고에 휘말릴 수 있겠지요. 교통사고를 예로 들어 볼까요? 여러분이 아무리 주의를 기울이고 신호를 잘 지켜도 상대 운전자가 정신을 살짝 놓으면 사고가 날 수 있죠. 이런 상황에서 우리를 구속하고, 도와주고, 잘못한 사람에게 책임을 묻는 것이 법입니다.
앞으로 법률적인 도움이 필요한 상황에 얼마든지 처할 수 있을 거예요. 그때를 대비해 미리미리 법을 모두 공부해 두는 것은 힘든 일일 거예요. 하지만 법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가 있으면 아주 헤매지는 않아도 될 것입니다. 앞으로 몇 주 동안 법률에 대한 이야기를 해 볼 텐데, 오늘 수업은 개론의 개론을 겉핥기로 배워보는 시간이라 생각해 보면 되겠습니다.
자, 선사시대로 거슬러 올라가 봅시다. 190만 년 전에 살았던 호모 하빌리스는 무리를 이루어 살았고, 그로부터 10만 년 뒤에 등장한 호모 에르가스테르는 사냥에 도움이 되지 않는 노인들도 배척하지 않고 지켜 냈습니다. 자기 무리를, 가족을 지켜내기 위한 수준의 최소한의 도덕과 윤리는 원시인류에게도 중요한 덕목이었습니다.
그런데, 스티븐 핑커의 “The better Angels of Our Nature(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들)”라는 책에 의하면 선사시대 인간의 15%는 같은 인간의 손에 살해당했다고 합니다. 약이 없어서 수명도 짧고, 맹수의 위협에 노출되어 있었지만 사람이 더 무서웠다는 이야기지요.
“우리”라고 부를 수 있는 자기 무리 밖의 존재에게는 도덕심과 이타심이 작용할 여지가 없었다는 뜻이기도 하며, 나아가 같은 무리 속의 구성원이라 하더라도 갈등이 생기면 힘의 논리로 해결했습니다. 자기 무리가 유지될 수준에서만 도덕심을 발휘하고, 갈등이 생기면 찔러 죽였어요.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 개개인이 가진 힘에 의하여 권리를 실현하는 것을 자력구제라고 합니다. 사회계약론적인 필요성이 대두되고 국가라는 체계가 잡히기 전에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개인이나 가족, 소속된 무리의 무력에 의존하는 사적인 보복행위가 일반적인 수단이었습니다.
자력구제는 신속하게 결과물을 쟁취할 수 있는 수단임에는 분명합니다. 복잡한 재판 과정이나 집행과정 없이 바로 목적을 달성할 수 있기 때문이죠. 재판으로 빌려준 돈을 받는 데는 5년이 걸리지만, 칼 들고 찾아가면 하룻밤이면 충분합니다. 하지만 여기에는 문제점이 많죠. 개인의 실력과 무력에 의존하는 해결 방식은 우리의 평온함을 해칩니다. 지금이야 “법대로 합시다!”라는 말이라도 뱉을 수 있는 세상이 되었지만 예전에는 한밤중에 복면을 쓴 무리가 칼을 들고 집안에 들이닥치는 일이 비일비재했어요. 여기서 끝나는 게 아니라, 짓밟힌 자존심을 회복하고 억울함을 해소하기 위해 복수도 빈번하게 일어났습니다.
자력구제의 세상에서 권리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무력을 갖추어야 했습니다. 아무리 능력이 뛰어나거나 성실한 사람도 월급을 받으려면 그 월급을 회사로부터 빼앗아 올 힘이 있어야 되고요, 슈퍼 주인이 고객에게 물건 값을 받으려면 손님을 압도하는 무력을 보유하고 있어야 되는 세상이에요. 폭력이 지배하는 세상이죠. 힘없으면 아무것도 못 하는 무서운 세상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시대적 착오를 거쳐 밤늦게 어린 학생 혼자서 걸어 다녀도 안심할 수 있는 나라에 살고 있을까요?
이 그림이 뭘까요? 지옥이죠.
자력구제가 너무 방만한 세상은 그 체계가 튼튼하게 유지되기가 힘들 것입니다. 지배자 입장에서는 사람들 사이 서로 눈치를 보고, 서로 힘을 키우며 약자를 짓밟는 세상은 달갑지 않을 것입니다. 절대권력은 지배자에게만 있으면 충분하며, 국민들 사이의 무자비한 혈전은 국력의 약화로 직결됩니다. 자력구제의 허용이 일정 범위를 벗어나 사회질서에 악영향을 끼칠 수준에 이르렀다면 거기에 제제를 가하는 방향으로 인간사회가 발전한 것은 어떻게 보면 당연한 수순입니다. 다만, 이는 지배자의 권력 강화가 주된 목표였지 인권보호 같은 현대적인 논리는 당시에 끼어들 여지가 없었습니다.
고대에도 각각의 씨족사회나 부족, 폴리스 내부에서 질서유지를 위한 규율을 운영하였습니다. 현대까지 전해지는 것 중 가장 오래된 것은 기원전 1700년 전에 만들어진 함무라비 법전입니다.
함무라비 법전에는 기초적인 형벌 내용은 물론, 사회질서 유지를 위한 다양한 제도들이 규정되어 있습니다.“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유명한 문구도 여기에서 등장했죠. 누군가 잘못을 저지르면 똑같이 갚아 주라는 무지막지한 원칙입니다. 말도 안 되는 방식 같지만 당시에는 인류가 유목이나 수렵 등 떠돌이 생활에서 정착 생활로 넘어가는 무렵이었기에 무력 다툼의 수준이 지금과는 차원이 달랐습니다. 소에게 물을 먹이다가 시비가 붙는 등 사소한 일이 마을과 마을 사이의 칼싸움으로 번지는 일도 굉장히 흔했습니다.
함무라비 법전에서 당한 대로 갚아주라는 것은 당했으면 딱 그만큼만 돌려주면 되니까 그 사람 마을에 쳐들어가서 전쟁을 일으키거나 그러지 말라는 뜻 아닐까요. 자력구제를 어느 정도 위축시키는 효과가 있었을 거예요.
이 외에도 돈을 내면 죗값을 치르는 것으로 보는 벌금과 비슷한 제도나, 재판제도, 군법, 상법, 농업, 채권, 친족, 이혼, 취첩, 간통죄, 근친상간 등 사회 전반을 아우르는 법규가 마련되어 있었습니다. 흉년에 돈을 빌린 사람은 1년 동안 무이자 혜택을 받는다거나, 성별에 상관없이 여성도 부모의 자산을 상속할 수 있다는 등 상당히 근대적인 관점의 내용들도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지배계층의 권력 강화 욕심 덕분에 자력구제의 세계는 조금씩 역사의 뒤안길로 저물기 시작했습니다. 아이러니하죠. 점점 개인 간의 갈등에 국가가 개입하기 시작합니다. 인류의 역사는 개인이 공동체로부터 보호받는 형태인 국가 구제의 세계로 접어들게 되었습니다.
기원전 450년경. 함무라비 법전이 나온 지 1300년 뒤죠. 로마에서 12 표법이라는 법이 제정되었습니다. 평민들이 귀족을 상대로 권리를 쟁취했고 이걸 법제화시킨 법안입니다.
이 법전의 주된 주제는 평민 계층의 권리장전이지만, 여기에는 사적인 복수를 억제하고 국가가 나서서 범죄자에게 형벌을 부여하는 공형법의 뿌리가 되는 조항들이 들어있었습니다.
함무라비 법전이 원시적인 수준의 국가구제를 제창하였다면, 12표법은 이를 사회 전반적인 약속으로 격상시킨 것입니다. 하지만. 아직까지도 권리의 실현은 개인의 손에 달려있었습니다. 살인과 같이 법으로써 금지하는 큰 범죄를 저질러서 사회질서에 위협을 가하는 수준이 아니라면 아직까지 자력구제를 금지하지 않았습니다.
자력구제가 처음으로 배제된 것은 2세기 무렵입니다. 비교적 최근이에요. 당시 민족 이동이 마무리되던 시기에 로마를 다스리던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황제는 직접 형벌권을 행사하며 자력구제를 금지했습니다. 분쟁이 생기면 국가의 권력이 개입하여 해결해 주는 게 옳은 세상이지, 힘의 논리로써 강자만이 권리를 보호받을 수 있는 세상은 그가 원하던 세상이 아니었습니다. 아주 훌륭한 지배자죠.
개인 사이 분쟁이 발생하면 국가가 개입해 합의금을 중재하고, 국가의 도움으로 갈등이 해결되면 합의금 일부를 세금으로 거두었습니다. 현대사회에서 이런 걸 민사소송이라고 부르죠.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전면적인 국가구제가 실시된 것이고, 약자가 권리를 보호받을 수 있는 세상이 비로소 도래했습니다.
비슷한 시기에 우리 역사는 어땠을까요?
기본적으로 자력구제를 허용하지만, 사회적으로 문제를 일으킬 수준이 되면 강력하게 처벌하는 것이 한반도 초기의 질서였습니다. 기원전 200년경 고조선의 8 조법은 살인은 사형, 상해는 배상, 절도는 벌금 또는 신분 강등이라는 법칙을 뒀습니다.
함무라비 법전보다 1500년 정도 늦게 제정된 법이지만, 보시면 함무라비 법전보다는 약간 더 인간적인 면모가 있는 법입니다. 그러나, 법이 너무 허술해요. 사람만 안 죽이면 되기 때문에 피해 가기가 너무 쉬운 법입니다. 이 정도로는 약자의 권리를 올바르게 실현하는 것이 불가능했을 것입니다.
한반도는 3국 시대가 되어서야 국가가 범죄자에게 직접 형벌을 가하는 제도가 만들어졌습니다. 한반도에서 국가 구제가 완성된 시점은 625 전쟁 이후입니다. 한반도에서는 조선시대가 되어서야 관아에서 억울한 일을 해결해 주고, 포도청이 고발을 받아 죄인을 압송하는 등 국가 구제의 기본적인 틀이 잡혔습니다.
하지만, 아주 신기한 현상이 벌어집니다. 유교정신이 확산되며, 명예를 지키기 위한 자력구제가 폭발적으로 증가했습니다.
“고의로 사람을 죽였어도 사람의 도리에 맞으면 용서한다"는 등, 명예살인은 허용을 넘어서 권장되는 추세였습니다. 정조 시대에는 국민이 정의로운 마음을 품고 의로운 분노로 사람을 죽이는 의살을 허용했고, 아녀자가 복수를 할 경우 열녀문을 세우는 등 의살을 권장했습니다. 의살은 유교적 이상 국가를 실현하는 수단으로 당시 가치관에 따르면 굉장히 바람직하고 권장할만한 행위였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됐을까요? 전국 각지에서 살인사건이 미친 듯이 벌어집니다. 에잇 우리 부모님의 복수다! 하고 사람을 죽이면 그 죽은 사람의 자식은 커서 뭘 할까요? 복수를 합니다. 이것 때문에 정약용이 의살의 범주를 법률로 정의하자는 상소를 발의한 적도 있어요.
법률의 발달은 자력구제를 억제하고 국가 구제의 힘을 키우는 방향으로 일어났습니다.
그 기저에 깔린 원동력은 지배계급의 권력 강화였지만, 반사적으로 약자의 권리 보호라는 목표가 달성되었습니다. 산업혁명과 프랑스혁명 등이 일어나며 인권이 강화된 오늘날, 법률은 상대적 약자를 보호하는 방향으로 계속해서 발달해 오고 있습니다.
자, 현대사회로 돌아옵시다. 돈을 빌려주고 못 돌려받고 있어요. 이 돈을 다시 받기 위해 돈을 빌려간 사람 집 창문을 와장창 부수고 들어가 현금을 훔쳐 나오는 경우를 생각해 봅시다. 분명 일순간에 빌려준 돈을 회수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어지간해서는 이러지 않고, 이렇게 행동하는 사람을 이상하게 바라보죠.
현대의 사회화 과정이 제공하는 도덕적, 윤리적 사고관이 사회운영체제를 반영하기 때문입니다.
현대사회에서는 자력구제는 드물게 일어나고, 지탄받을 일로써 여겨집니다. 우리는 “문명인에게는 그에 걸맞은 해결수단이 있다"는 점을 교육받으며 자랍니다. 국가 구제의 혜택을 누릴 준비를 하는 것이지요.
국가 구제는 권리의 실현을 국가의 권능으로써 대신 해 주자는 이념을 뜻합니다. 사회의 분위기나 질서에 따라 국가 구제의 기준점은 많이 다르지만, 민주주의와 신자유주의가 지배하는 대한민국에서는 법률에 그 기준점과 근거가 마련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대한민국 국민은 사회생활에 있어 법률의 규제를 받고, 그 테두리 안에서 합당한 범위의 권리 의무를 서로 주고받으며, 더 나아가 질서유지를 위해 경찰서에 죄인을 신고하고 분쟁해결과 권리 실현을 위해 법원에 소장을 제출해 소송을 겁니다.
학교폭력이 요즘 문제죠. 중학교, 고등학교에서는 주먹을 주고받는 싸움이 아주 흔하게 일어나지만, 대학교에서는 그런 사건을 접하기 힘든 이유도 국가구제의 강화에 있습니다. 사회화를 거치며 사법제도에 대한 이해가 깊어졌고, 사법기관의 처벌에 대한 두려움이 자리 잡았기 때문이에요.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지 않는 어린 친구들이 어른보다 더 무서운 범죄를 저질렀죠.
인간 사회는 사실상 형벌에 대한 두려움과 함께 발전해 왔습니다. 수틀리면 가족도 죽일 수 있었던 선사시대와 비교해 지금은 분위기도, 질서도, 그리고 우리의 마음가짐도 전혀 달라졌습니다.
지금까지 인류가 인간다워진 이유를 알아봤습니다. 자력구제에서 국가구제로 변모되는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한 것은 바로 법률이었습니다. 현대사회의 국가구제의 실현 기준이 되는 법률은 사회와 국가라는 이름의 절대자의 판단기준이고, 우리의 행동을 제약하는 경전이며, 인간과 인간 사이의 갈등을 중재해 주는 스승과도 같은 존재입니다.
법률이 우리를 구원에 이르게 하지는 못하더라도 적어도 피의자를 법원에 소환하여 법의 심판을 받게 할 수 있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갈등 해결과 권리 실현을 위한 자력구제를 완전히 배제하고 국가의 사법 권능을 믿고 위탁할 수 있는 세상이지요. 개인을 위한 사권을 공권의 영역으로 확장하여 권리의 보호와 실현을 정부가 주도합니다. 이런 영역을 민사법이라고 부릅니다.
민법의 기본적인 철학은 민법 750조입니다.
고의 또는 과실로써 위법하게 손해를 끼친 자는 이를 배상한다.
민사에서는 손해 전보라고 해서, 돈으로 상처를 어루만진다는 철학이 있습니다. 손해가 발생하면 이걸 가해자로부터 돈을 뜯어내고, 그 돈으로 어루만져 상처를 치료한다는 논리예요. 여러분이 가장 크게 망하는 방법 중 하나가 민사소송 걸리는 겁니다.
법률이 죽은 사람을 살려 내지는 못하지만 살인자의 빛과 미래를 빼앗을 수는 있습니다. 명예와 한풀이를 위한 의살은 할 수 없는 세상이지만, 복수를 위해 전국 팔도를 누빌 필요도 없는 세상이지요. 날카로운 칼을 심장에 꽂아 넣는 것으로 복수가 끝나는 게 아니라, 주먹만 한 판사봉이 세 번 탕탕탕 울리면 복수가 끝나는 세상입니다. 이런 영역을 규정한 법률을 형사법이라고 부릅니다. 아. 현실에서는 판사봉 안 쓴다고 들은 거 같긴 해요.
창업을 할 때에는 이 두 가지 원칙을 꼭 명심해야 합니다. 타인에게 손해를 끼치면 배상을 해야 되고요, 나쁘게 돈을 벌면 감옥 가시는 겁니다.
법률이 범죄자를 처단하며 사회가 안정화됨에 따라 법이 곧 정의라는 인식이 생기기에 이르렀습니다. 그런데 정말로 법이 정의일까요?
중세 독일의 법관이자 학자였던 베네딕트 카르프조프는 2만 명의 여성을 마녀로 지목해 합법적으로 화형대로 보냈고, 1만 명의 죄수에게 합법적으로 사형 선고를 내렸습니다. 이게 정의일까요?
실제 사례를 들어볼게요. 독일 통일 전, 동독 사람들이 서독으로 탈주하자 동독 정부는 국경수비대에게 명령을 내렸습니다. 탈주하는 국민을 즉시 사살하라. 이 명령에 따라 국경수비대원 A는 장벽을 넘으려는 민간인을 총살했습니다.
독일 통일 이후 A씨는 살인죄로 기소되었는데요, 이 경우 유죄일까요 무죄일까요?
법률과 정의를 논하는 두 가지 관점에 따라 해석해 보겠습니다.
법실증주의에 따르면 A는 법과 명령을 따른 것일 뿐이므로 살인죄가 성립할 수 없고, 아무리 나쁜 법이라도 합법적으로 움직였기 때문에 잘못이 아니라고 합니다. 악법도 법이라는 것이죠.
반면에 자연법론에 따르면 악한 법은 법이라고 볼 수 없기 때문에 양심에 따라 A 씨는 명령을 거부했어야 하고, 사람을 죽인 A 씨는 살인죄를 저지른 것으로 봅니다.
하나의 사건과 법률을 놓고도 그에 따라 다양한 방향으로 철학적인 해석을 시도할 수 있는 것이고, 그에 따라 결과가 달라지기도 합니다.
악법은 대체로 시간이 흐르며 사회적인 반감이 축적되면 제거되기 마련입니다. 또한 법률이 필요한 부분도 국민의 요청에 따라 보강되기 마련이고요. 현대 대한민국 법령에서는 비윤리적인 법조문은 상당히 많이 제거가 되었습니다.
여러분이 앞으로 법을 직접 공부할 일은 거의 없겠지만, 이거 하나를 이해하고 갑시다. 지금까지 법률이 왜 생겨났고, 어떻게 발전했는지를 살펴보았죠. 이러한 견지에서 사고할 수 있는 능력을 “Legal Mind”라고 합니다. 약자 보호, 자력구제의 배제, 국가가 개입한 갈등 해소라는 이런 마인드에 기반해서 문제를 해결하려 한다면 아마 많은 법률문제를 피해 갈 수 있을 것입니다.
리걸마인드에서 가장 중요한 원칙은 신의성실의 원칙입니다.
신의성실의 원칙은 보통 신의칙이라고 줄여서 말합니다. 사회 공동체의 구성원들은 서로 다른 사람의 신뢰를 헛되이 하지 않도록 성실하게 행동해야 한다는 원칙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모두 앞장서서 착하게 살아가고, 타인의 마음을 배려하며 살아간다면 모두가 행복한 세상이 찾아올 것이지만 세상은 다양한 인간 군상의 욕망이 꿈틀거리며 굴러갑니다. 정직하고 성실하지 않게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법적인 제재를 가하고, 반사적으로 정직한 사람을 보호하기 위한 제도가 필요한데 신의칙이 이런 역할을 합니다.
신의칙은 상거래, 부동산 임대, 고용계약 등 사회 전반에 걸쳐 모든 범위에 적용됩니다.
신의칙의 뿌리는 헌법에 있습니다. 헌법 23조는 1항에서 모든 국민의 재산권은 보장되고, 그 내용과 한계는 법률로 정한다고 규정합니다. 2항은 재산권의 행사는 공공복리에 적합하도록 해야 한다고 규정합니다.
1항은 “개인의 권리와 욕망, 의견은 존중되어야 한다"는 의미이며, 2항은 “하지만 그로 인하여 다른 사람의 권리나 재산, 이익에 불이익을 입혀서는 안 된다”는 의미입니다.
신의성실의 원칙은 4가지 형태로 발현됩니다. 모순 거동 금지의 원칙, 실효의 원칙, 사정변경의 원칙, 그리고 권리남용 금지의 원칙. 권리남용 금지는 신의칙과 별개로 보는 것이 대부분 학자들의 견해인데 저는 그런 견해에 반대합니다. 여하튼 상세하게 알아볼게요.
모순 거동 금지의 원칙은 자신의 선행행위와 모순되는 후행 행위는 허용할 수 없다는 원칙입니다.
금반언이 적용되려면 (1) 일정한 방향의 선행행위가 존재하고, (2) 상대방이 그 선행행위를 신뢰하여 그를 기초로 행동을 취하고, (3) 그 선행행위와 모순되는 후행 행위가 뒤따르고, (4) 그 후행 행위의 효력을 그대로 인정하면 선행행위를 신뢰한 상대방에게 부당한 불이익이 발생할 경우 적용됩니다.
예를 들어보면, A라는 사람이 B라는 회사에 가서 어떤 기계를 5대 구매하면 10억을 투자하기로 했어요. 그 말을 믿고 그 기계를 5대나 샀습니다. 그런데 A가 투자하지 않기로 말을 바꿔요. 그러면 B는 불필요한 기계를 5대나 구매해서 손해가 발생했지요. 이럴 경우 금반언이 적용됩니다. B가 소송을 걸면 투자를 하지 않기로 한 의사표현이 무효가 됩니다.
여러분 스스로를 지키기 위한 규칙이기도 하지만, 여러분도 타인에게 정당한 신뢰를 심어줬다면 이를 절대 배신하면 안 됩니다.
실효의 원칙은 금반언이 다른 형태로 발현된 것이에요.
(1) 권리자가 장기간에 걸쳐 그 권리를 행사하지 않고, (2) 상대방이 그 권리자가 권리를 더 이상 행사하지 않겠구나 신뢰하였는데, (3) 갑자기 권리를 행사하면 그걸 무효로 봅니다.
예를 들면, 제가 돈을 빌렸어요. 10억 정도. 이제 갚으려고 갔는데 “에이 안 갚아도 돼 우리 사이에 무슨“ 하면서 계속 거절합니다. 몇 년째 이러니까 저는 진짜 안 갚아도 되는구나 싶어서 그걸 다 써버렸어요. 근데 8년째 되는 해에 갑자기 찾아와서 돈 갚으라고 소송을 걸겠다고 하면, 어떻게 해야 될까요? 상대가 안 갚아도 된다고 해서 저는 그걸 정당하게 믿었죠. 이런 경우 돈을 돌려받을 권리가 실효되어 사라지는 것으로 봅니다.
사정변경의 원칙은, 과거와 현재 사정이 많이 달라진 경우에 적용됩니다.
예를 들면, 일제시대에 1만 원을 대출해서 차용증을 썼어요. 당시 돈으로 1만 원이면 지금은 몇십억 할 거예요. 물가변동, 시장개방, 경제개혁 등을 고려하여 현재가치로 계산해서 돈을 갚아야지, 당시의 대출금을 갚겠다고 지금 세종대왕 한 장 주면 이게 정당한 걸까요? 아니죠. 이런 부당함을 막기 위한 원칙이 사정변경의 원칙입니다.
스타트업은 대부분 다른 기업과 비교해 을의 관계가 되기 때문에 사정변경에도 권리를 보호받지 못할 수도 있어요. 그래서 사정변경의 원칙을 잘 알아 두셔야 합니다.
권리를 행사하는 목적이 오직 상대에게 고통을 주고 손해를 입히려는 데 있을 뿐 아니라, 권리를 행사하는 사람에게 아무런 이익이 없는 경우 이 권리의 행사를 금지하는 원칙입니다.
예를 들면 소송을 걸어도 이득이 전혀 없는데 굳이 상대방을 법원에 왔다 갔다 괴롭히기 위해 소송을 거는 행위 등이 있겠습니다.
여러분이 창업을 하면서 조심해야 될 법규들은 대부분 수천 년간 무수한 사례들을 겪으며 다듬어진 것이기 때문에 앞으로도 안 바뀔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런 법률들을 이해하기 위한 기초소양을 다지기 위해 오늘은 법학 개론의 개론을 준비해 봤습니다. 재미있으셨나요?
질문 있는 학생은 따로 남아서 질문하시고요, 집에 가셔도 좋습니다. 수고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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