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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머리 좋은 사람들을 좋아한다. 말이 잘 통하거든. 그래서일까? 편하게 연락을 주고받고 가까이 지내는 사람들 중에 멘사 회원이 흔하다.
멘사 회원들은 스스로를 멘산이라고 부른다. 필자는 원래 멘산들을 놀려 대느라 바빴다. 왜냐고? 멘사 시험을 치기 위해서는 돈을 내야 하고, 매년 회비를 추가로 납부해야 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꿀팁을 하나 주겠다. 사람이 많은 장소에서 멘사 회원을 멘산이라고 부르면 굉장히 부끄러워하고 고통스러워한다.
며칠 전.
멘사 회원인 친구와 카톡을 하던 중 멘사 이야기가 나왔다. 그 친구 왈, 멘사 입회가 중단되었다고.
"엥? 왜?"
"시험 감독관이 부족해서 시험을 못 친대. 홈페이지 들어가니까 공지 뜨던데?"
사실이었다. 아래와 같은 공지사항이 올라와 있었다.
멘사코리아에서는 테스트 감독권한자 인원 부족 등의 내부사정으로 불가피하게 2020년 1월부터 입회 테스트를 잠정 중단하게 되었습니다.
원활한 테스트 재개를 위하여 제반사항에 대해 정비, 개선하는 시간을 갖고자 하오니, 멘사코리아에 관심을 갖고 계신 분들께 이 점 양해를 구합니다.
가능하면, 올 상반기 중에 입회 테스트가 재개될 수 있도록 멘사코리아 모든 조직과 구성원이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습니다.
2020. 1. 9 멘사코리아
"너 이제 멘사 가입 안 하는게 아니라 못 하는 거임."
"어. 반박을 할 수 없게 되어버렸네."
아. 왠지 모르게 기분이 이상했다. 별로 가입하고 싶은 생각도 없었고 돈도 아깝다고 생각해왔는데, 막상 가입을 못 하는 상황이 되니 가입을 하고 싶어진 것이다. 청개구리 그 자체다. 그래서 결심했다.
"나, 나도 멘사 같은거 가입 할거야."
"그러시던가."
심드렁한 친구의 반응에 더 자극이 왔다. 아아.
"이왕이면 사람 많은 곳이 좋겠지? 단체니까 사람이 많아야 재미가 있지."
"뭐야 너 진짜 하려고? 어휴 돈 아까운 줄 모르네."
"조용해봐."
구글에 high iq society라고 검색했다. 영문 위키백과를 비롯해 몇 군데를 돌다가 고지능단체들이 모여서 만든 협회를 발견했다. 모객을 열심히 하는 단체라면 이런 협회에 가입하지 않았을리가 없지. 이 협회에 가입된 단체 목록을 띄워봤다.
세상에. 단체가 너무 많다. 나는 세상에 멘사랑 프로메테우스 소사이어티밖에 없는 줄 알았는데. 수십 개나 되는 고지능 단체가 기재되어 있었다. 이 중에서 어디에 가입을 해야할까?
첫 번째로, 가입 커트라인이 멘사 이하인 곳은 모두 걸렀다. 멘사 친구한테 자극 받아서 가입처를 찾는 중인데, 멘사보다 가입하기 힘든 곳을 찾아봐야 수지타산이 맞지 않겠는가? 멘사는 IQ 130 (std 15) 이상이면 가입할 수 있다. 대충 상위 2% 수준의 지능이면 가입할 수 있는 단체다. 50명 중의 1명 정도.
두 번째로, 홈페이지가 접속이 안 되는 사이트들도 모두 걸러냈다. 예를 들면 Three Sigma Korea(TSK) 같은 경우 홈페이지가 접속이 안 된다. 단체명에도 코리아가 들어가고, 한국인이 창설한 단체라고 해서 관심이 갔지만 홈페이지가 닫혀 있어서 아쉬울 따름이었다. 이 사이트는 IQ 145 (std 15)이상이면 가입할 수 있는 단체라고 한다. 750명 중의 1명 정도.
세 번째로, 웩슬러 지능검사 결과를 받아 주는 단체여야 한다. 예전에 시험을 봐 뒀었기에. 테스트에 추가적인 시간과 금전을 지출하고 싶지 않았다.
네 번째로, 역사가 어느정도 있는 단체에 가입하고 싶었다. 고지능 단체라는 정체성 자체가 사실 존속하기 쉽지 않은 구조다. 멘사도 회원 모집이 잘 안 돼서 커트라인을 내렸던 전적이 있다. 뚜렷한 목적의식 없이 단순히 자격을 갖춘 사람들만을 수집하는 단체가 장기간 존속하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20년 넘게 지속된 단체라면 그래도 어느정도 매력이 있다는 뜻이리라. 그러니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하고, 단체가 유지가 되는 것이겠지.
이런 기준으로 단체를 물색해 봤다. 목록에서 세 군데가 잡혔다.
Intertel Society (IQ > 135, std 15)
http://www.intertel-iq.org
인터텔은 1966년에 창설되었다. 엄청 오래됐다. 대한민국 국세청과 나이가 같다. IQ 가입 커트라인은 상위 1%다. 멘사를 제외한 모든 단체 중에서 가장 활동이 활발한 것 같다.
오프라인 행사도 꾸준히 열리고 있고, 회원이 얼마나 많은지 7개의 지역구로 나눠서 관리한다. 대체로 북미쪽 사람들이 대부분인것 같다. 일년에 10번씩 회지도 발간한다고.
Colloquy Society (IQ > 139, std 15)
https://colloquysociety.org
Colloquy society는 사교보다는 지적인 교류를 위한 성격이 강하다고 한다. 1998년에 창설되었다고. 홈페이지의 소개에 의하면 학술적인 이야기를 주고받는 포럼에서 시작했다고 하는데, 가입비가 무료다. 홈페이지에서는 여러 주제를 두고 회원들이 나눈 토론이 공개되어 있다. 주제도 참 철학적이고 재미있다.
무엇보다 가장 마음에 드는 점은 무료라는 점이다.
Poetic Genius Society (IQ > 139, std 15)
https://poeticgenius.org
PGS는 1998년에 창설된 단체로, 시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 모인 단체다. 가입을 원한다면 단순히 IQ 증명 뿐 아니라 출판된 시를 제출해야 한다고. 그런데 이 출판이라는 기준이 굉장히 낮다. "High school poetry magazine"에 수록된 형태도 괜찮다고.
아무래도 필자는 글을 즐겨 쓰는 사람이 아닌가. 홈페이지가 살아 있는 모든 단체 중 여기가 가장 마음에 들었다. 회원들이 홈페이지에 시를 자유롭게 올릴 수 있다. 최근에 올라온 게시물은 2월 6일경. 다른 사이트에 비하면 양반이다. 무엇보다 가입비가 무료다. 가장 마음에 드는 점이다.
일단 이렇게 세 군데에 가입 신청을 넣었다. 인터텔이 가장 답변이 빨랐다. 역시 역사가 깊고 활동이 활발한 단체라서 그런가? 필자의 생각에는 상근 인원도 두고 있는 것 같다. 친목 단체에서 풀타임 직원을 고용할 수 있을 정도면 재정도 튼튼하다는 뜻일테고. 인터텔이 쉬이 망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신청료로 $10을 납부했고, 연 회비로는 $44.67을 납부했다. 30달러 대의 멤버십도 있었는데 $44.67을 납부하면 회지를 오프라인으로 발송해 준다고 한다. 일 년에 열 권이니까 나쁘지 않은 가격인 것 같다. 모든 결제는 페이팔로 진행했다. 결제 시스템이 잘 갖춰져 있어서 좋다.
미국인이 아니고서야 인터텔에서 누릴 수 있는 혜택이라고 한다면 회지 정도 뿐이다. 인터텔에서는 Integra라는 이름의 회지를 일 년에 10권씩 발행하고 있다.
회지의 주제는 매번 바뀌는 것 같다. 최근 호의 주제는 시. 머릿말의 편집자 후기가 굉장히 인상적이다.
"시는 글자가 적으니까 편집하기 쉬울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겠죠? 저도 일주일 전까지는 그렇게 생각했어요. 그런데, 아냐. 절대 아냐. 진짜 절대 아니라고."
대충 위와 같이 의역할 수 있겠다. Integra의 맨 뒷장에는 인터텔 굿즈들을 주문할 수 있는 주문서가 제공된다.
음. 아무런 사진도 없이 달랑 문구만 있으니 이거 원 굿즈를 사고 싶은 생각이 별로 생기지 않는다. Certificate나 구매하기로 했다. 메일로 문의를 넣었는데 새벽 5시에 답장이 와 있었다. 아. 시차 덕분이구나. 배송료로 $14.5를 납부했고, 2 장의 certificate를 $12에 구매했다. 멘사 친구들에게 돈 아깝다고 놀렸던 자신을 반성한다.
회원 목록에서 개인정보를 공개해 둔 회원들의 목록을 살필 수 있다. 한국인이 얼마나 있나 싶어서 Kim, Lee, Park 등을 검색했다. 전혀 나오지 않는다. 호오라.
회원들의 분포를 알아볼 수 있는 지도 기능도 있길래 실행해 보았다.
북미와 알래스카를 제외한 국가들은 Region 6으로 분류된다. 대충 유럽과 호주쪽에 핀이 많이 꽂혀있다. 한국 쪽을 확대해 봤다.
어라. 한국에는 핀이 하나밖에 없네.
확대해 보니 한반도에는 핀이 딱 하나, 안동시에 꽂혀 있었다. 그렇다. 인터텔에 한국인 정회원은 필자 뿐이었던 것이다. 정회원이란 회비를 납부하는 회원을 의미한다. 즉, 2020년치 회비를 납부한 호구는 필자 뿐이라는 뜻.
안녕하세요, 대한민국의 유일한 인터텔 정회원 반병현입니다.
이런 이야기를 멘사 친구에게 들려줬다. 관심을 가진다.
"너 어차피 멘사 회비 안 내지 않았냐? 멘사보다 훨씬 싸. 여기로 갈아타."
"그런데 난 웩슬러 검사를 본 적이 없는걸?"
"멘사 테스트에서 IQ 156 (std 24) 나왔으면 받아준대."
"어 그래?"
"음. 나 돈 없는데."
"야 그래도 멘사보다 희소하지않냐?"
"그런 것 같기는 한데, 다른 멘산도 저기 처음 들어본다는데?"
"너가 수도권의 유일한 인터텔 회원이 되는거야."
"그래. 한국 유일은 형한테 뺏겼지만 수도권 유일은 좋지."
이렇게 멘산 녀석의 자발적인 가입을 유도했다. 흠흠. 이제 한반도에 핀이 두 개 꽂히겠지. 꼬시는 김에 다른 녀석들에게도 연락을 넣었다.
휴. 조금만 더 열심히 활동하면 플래티넘 회원으로 올라갈 수 있겠지?
인터텔은 행정처리가 빠르고 활동이 활발한 점이 특히나 마음에 들었다. 문의를 넣으면 답변이 오기까지 12시간이 넘어가는 일이 없다. 매우 흡족하다.
반면 Colloquy Society와 Poetic Genius Society는. 음. 나를 받아 주기가 싫은가보다.
PGS는 정말 마음에 들었는데. 안타깝다.
답장을 기대하기 힘들 것 같아 다른 두 개의 단체에 가입신청을 새로 넣었다. 여기는 과연 답변이 일찍 올것인가?
아무래도 고지능 단체라는 것 자체가 활발하게 활동하기 힘든 구조다. 어떤 공통의 목적이나 관심사를 가지고 모인 것이 아니라, 단순히 특정 자격요건이 되는 사람을 모집하는 단체다 보니 이게 활발하게 굴러가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실제로 협회에 가입은 했지만 홈페이지가 들어가지지 않는 단체도 있고.
이번에 단체들을 찾아보며 많은 단체가 '제 아이큐는 이 정도 이상이에요!'라고 자랑하기 위한 타이틀로써 기능하고 있지, 상호교류나 모임을 위한 활동은 뒷전인 것 같다고 느꼈다.
단순히 타이틀을 수집하는 것이 가입의 동기라면 본인의 IQ로 가입할 수 있는 가장 커트라인이 높은 단체에 찌르면 되겠지만. 글쎄. 거기는 사람 수도 엄청나게 적을 것이고, 활동도 뜸할 가능성이 클 수도 있다는 점을 염두해 둬야 한다. 인터텔같이 크고 활발한 단체에도 한국인 회원이 없잖은가.
단체 자체에 의미를 두기보단 회지에 투고나 하면서 소소한 재미나 누려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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