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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쓰는 엔지니어
"그 사람 만나보니 어땠어?" 아침 수영 후의 샤워실. 상상텃밭 류동훈 이사가 샴푸 거품을 덕지덕지 묻힌 채로 이야기했다. 그 모습을 보고 있으니 문득 어린 시절 크리스마스 트리에 솜을 뿌려 장식하던 게 생각나 기분이 좋아졌다. 거품이 마치 소복이 쌓인 눈 같다. 어린 시절부터 몽글몽글하고 포근한 솜을 참 좋아했다. 잠시 고민하고 이야기했다. "소금 안 친 곰국 같은 사람이었어." "그게 무슨 소리야?" "말 그대로야. 소금 안 친 곰국은 싱겁기는 한데 못 먹을 정도는 아니지. 그렇다고 느끼하지만 그렇게까지 불쾌하지는 또 않아. 밥을 말기에는 좀 더 짜면 좋겠지만 그렇다고 또 맛이 없지는 않고. 니맛도 내맛도 아닌것 같으면서도 깊은 풍미는 또 있어. 근데 또 같이 곁들이는 짠 반찬의 맛은 살려주는 것 같..
금요일 저녁이었다. 불과 이틀 전 실연을 겪은 터라 짙은 상실감에 젖어 하루를 보냈다. 주말이 다가오면 바리바리 짐을 꾸려 장거리 운전을 했었다. 그런데 이제는 그럴 필요가 사라졌다. 갑자기 시간이 많아지니 당황스러웠다. 책을 읽고 싶어졌다. 내 필체의 뿌리가 된 책을 리디북스에서 검색했다. 56권 연재 중. 아직까지도 완결이 나지 않았다. 내가 중학교 시절 처음 접한 책인데! 작가분께서는 아마 빌딩을 올리셨을 거다. 출판사는 이 책 덕분에 사옥을 새로 지었겠지? 금요일 밤이다. 오늘 뭐라도 하지 않으면 주말 내내 아무것도 하지 못할 것 같다는 불안감이 들었다. 여유가 불안으로, 불안이 강박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오늘의 나는 예민하구나. 스스로에게 조심해야겠다. 쓸 데 없는 생각을 하다 보니 점점 퇴근시..
"우리는 처음에 그 오빠 되게 속을 안 보여주는 사람인 줄 알았어요. 보여주는 모습은 되게 단순하잖아. 대체 그 속에 뭐가 있지? 하면서 고민했거든. 같이 놀기도 하고, 술도 먹고 친해진 것 같은데도 잘 모르겠는거에요. 그런데 독서실 같이 다니면서 알게 되었지. 그 오빠는 보이는 그대로 솔직한 사람이란 걸." "걔가 좀 표리동동한 사람이지." "맞어." 짠. 잔을 가볍게 부딛힌다. 노란 맥주가 목을 건드리며 지나가는 것이 따끔따끔 시원하다. 이렇게 세 명이서 술을 먹어 보기는 또 처음이었다. 원래는 술을 먹을 생각은 없었다. "그렇게 됐어. 그래서 지금 우울해." 카페에 모두 모여 수다를 떨고 있었다. 최근 나에게 있었던 일이 화젯거리가 되었다. 영화 시나리오로 써도 될 기승전결 완벽한 스토리다. 다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