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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글

민트초코 우정

halfbottle 2020. 5. 30. 2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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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요일 저녁이었다. 불과 이틀 전 실연을 겪은 터라 짙은 상실감에 젖어 하루를 보냈다. 주말이 다가오면 바리바리 짐을 꾸려 장거리 운전을 했었다. 그런데 이제는 그럴 필요가 사라졌다. 갑자기 시간이 많아지니 당황스러웠다. 책을 읽고 싶어졌다. 내 필체의 뿌리가 된 책을 리디북스에서 검색했다. 56권 연재 중. 아직까지도 완결이 나지 않았다. 내가 중학교 시절 처음 접한 책인데! 작가분께서는 아마 빌딩을 올리셨을 거다. 출판사는 이 책 덕분에 사옥을 새로 지었겠지?


  금요일 밤이다. 오늘 뭐라도 하지 않으면 주말 내내 아무것도 하지 못할 것 같다는 불안감이 들었다. 여유가 불안으로, 불안이 강박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오늘의 나는 예민하구나. 스스로에게 조심해야겠다. 쓸 데 없는 생각을 하다 보니 점점 퇴근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하. 나 좀 징징거려도 되냐?"

 

  카톡이 왔다. 분명 부정적인 주제로 대화가 이어질 것이 틀림없겠으나 너무나도 반가웠다. 오랜 시간 이 친구를 괴롭혀왔던 고민이 있는데, 이번에도 그 연장선이었다. 몇 장의 사진이 함께 날아왔다. 보는 내가 다 어깨가 움츠러든다.

 

  "일단 민초 사 먹으러 나왔음. 인생은 민트초코지."

  "인정."

  "한번 겪어본 거라서 침착하다. 엿같음과는 별개로 생활 영위 가능."

  "바퀴벌레급 멘탈 인정합니다."


  아끼는 친구가 장기간 고생하는 것을 보니 마음이 아팠다. 그래도 이 친구 작년에 비해서 정말로 강해진 것 같았다.


  "고작 이런 일로 꺾인다면 더 큰 고난이 오면 도망칠 생각부터 할 것 같아서 버텨보는 중인데, 쉽지는 않군."

  "그렇지. 힘든 게 당연하지. 이 와중에 그런 생각 하는 것도 대단하다."

  "인생은 즐기라고 있는 것. 하지만 쉽지 않군. 하드모드야."

  "난이도 조절 실패했네."

  "멘탈 강화는 대폭 이루어짐. 오늘 좀 엿같아서 징징대긴 했는데 눈물은 안 나네."

  "멘탈은 정말 존경한다."

  "민초 먹고 좀 기분 좋아지기까지 했어."

  "야 그건 멘탈이 성장한 덕인지 민트초코의 효능인지 알 수 없는 거 아니냐?"


  실없는 소리를 주고받는다. 기분이 좋아지기 시작했다. 대학교에서 사귄 친구는 오래 못 간다던데, 이 녀석 덕분에 나는 그런 이야기를 믿지 않게 되었다. 카이스트를 다니며 가장 잘한 게 있다면 그녀와 친구가 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종종 한다. 물론 당사자 앞에서는 이런 이야기 절대 못 하지만.

 

  "나도 최근에 좀 저점 찍고 있는데 너 멘탈 잡는 거 보고 반성 중이다."

  "바닥을 지하까지 뚫고 내려가면, 인생은 파탄 나는 게 아니라 성장하는 것 같아."

  "근데 너는 거의 뭐 지하실에 살림 차리고 아늑하게 인테리어까지 해 두는 수준 아니냐? '다음에 내려오면 쉬다 가야지.' 하는."

  "애매한 고난은 성질을 더럽게 만들지만 큰 고난은 깨달음을 주나 보다."

  "근데 거기서 안 무너지고 성장하는 것도 다 그만큼 그릇이 되기에 가능한 거고."

  "내가 그릇이 된다기보단 응원해준 사람들이 많아서 힘을 낼 수 있는 게 아닐까?"

  "인복도 그릇이고 역량이죠?"

  "고맙다 니 덕분도 20% 이상 있음."

  "와 내 지분이 그렇게나 많아? 대주주네? 인생 헛살지는 않았구먼."


  어쩌면 지금의 나에게 가장 필요한 위로가 이것이었던 것 같다. 공감과 위로가 결여된 사람이라는 평을 들은 터라 스스로를 돌아보는 데 많은 시간을 쏟고 있었고, 이게 자존감을 갉아먹는 큰 원인이 되었었다.


  "근데 어떤 사람의 최후의 말은 상대방에게 최대한의 상처를 주기 위한 시도라고 생각해. 내가 또 많은 고찰을 했잖아. 건덕지가 있긴 했을지언정 네가 진짜 그런 사람은 아니었을 거야."


  어느새 입장이 역전되어 있었다.


  "네가 어떤 말에 상처 입었다면 그 사람이 너에게 많이 소중한 사람이었기 때문이겠지. 그런데 그 말이 너를 정의할 수는 없다."

  "명심하겠습니다. 덕분에 조금이나마 성찰할 기회도 생겼고 나쁘게만 생각하지는 않으려고 노력하는 중이야."


  한참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문득 '이 친구에게서 사리가 한 사발은 나오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랑 나이도 같은데 어떻게 이렇게 성숙할 수 있을까.


  "기왕 찾아온 경험이라면 이로써 성장해야 의미 있는 삶이 아닌가."

  "맞다. 똑같이 시간이 흐를 거면 하나라도 더 챙겨야지. 슬퍼해도 시간은 가고 거기서 다른 노력을 해도 시간은 똑같이 가니까."

  "그래서 내 프로필 음악이 아모르파티야."

  "이번 주에 술도 먹고 친구들 불러서 하소연도 해 보려고 했는데 지금 이 카톡이 제일 큰 구원인 것 같다."

  "뭐지 내가 징징거리려고 연락했다가 난 존나 민트초코 먹고 다 털었네."

  "나도 민트초코 사 먹어야겠다."


  하지만 민트초코를 사 먹지 못했다. 주변 베스킨라빈스가 모두 문을 닫았을 시간이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그래도 괜찮았다. 그 날은 악몽을 꾸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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