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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글

회고록에 대하여

halfbottle 2020. 5. 30. 2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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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저마다 감수성을 표현하는 방식이 있을 것이다.


나는 감정이 차올라 넘쳐 흐르려는 순간을 포착하여 그것을 활자라는 형태로 하얀 배경 위에 쏟아버린다. 계획적이기 보다는 즉흥적인 표현에 가깝다. 퇴고도 안 한다. 몇 달 전에 브런치에 올려둔 글을 다시 읽다가 오타를 발견해 황급히 수정하는 일은 매우 빈번히 일어난다.


이런 저술방식은 감정을 정돈 없이 풀어놓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작가의 개성과 스타일이 되는 것이다. 하지만 한 가지 치명적인 문제점이 있는데, 작가의 감정선에 따라 작품활동의 빈도가 좌우된다는 뜻이다. 요즘 내 브런치에 글이 올라오지 않는 것 또한 이런 이유이며, 오늘 여러 편의 글을 한 번에 쏟아내는 것 또한 마찬가지이다.

 

덕분에 나는 소설과 같은 정교하게 설계된 허구의 세계를 글로써 구현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 지금 내가 느끼는 감정을 쏟아내는 작업과는 많은 곳에서 다르기 때문이다. 중학생 때에는 장편소설을 연재했는데 그 때에는 모든 등장인물에 몰입해 메소드연기를 하듯이 글을 써나갔던 것으로 기억한다. 가장 에너지가 충만한 나이였지만 금 감정이 고갈되곤 했다. 힘든 일이다.


그래서 수필로 정착했다. 내 장점을 가장 부각시키면서도 글에 끌려다니지 않을 수 있는 몇 안 되는 문학장르. 가장 아늑함을 느끼는 나의 영역.


비문학은 논외다. 논문 쓰던 솜씨 어디 안 갔다. 다만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는 글이 정보전달력을 가진다는 이유만으로 예술 바깥 영역으로 규정되는 데에는 큰 반감을 가지고 있다. 내가 가장 많은 노력을 기울이는 영역이 이쪽이다. 한 명의 예술가로써 이 도그마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것이 일종의 작품활동 방향이라고 보면 된다.


그런데 수필 장르 안에서도 특히나 어려움을 겪는 영역이 있다. 과거를 회고하는 글이 그것이다.


회고록을 작성하려면 먼저 그 당시의 감정으로 돌아가 나를 가득 채워야 한다. 일종의 메소드연기로 볼 수도 있겠다. 연기의 대상인 캐릭터가 가상의 인물이 아니라 과거의 내가 되는 것이다.


한동안 시간을 들여 당시의 감정에 이입한 뒤, 그 당시로 돌아갔다 생각하고 떠오르는 사건들을 머릿속에서 한 번 더 겪어본다. 감정이 격해지는 순간을 성공적으로 포착해냈다면 글을 작성할 수 있다.


실패했다면? 기교로만 가득 찬 재미없는 글이 나올 것이 뻔하므로 작성을 시작할 수 없다.


오늘은 역삼에서 변리사 2차시험을 준비하던 시절로 돌아가보려 애쓰고 있다. 당시의 나는 어떤 생각을 하는 사람이었고, 누구를 만났으며, 어떤 방식으로 하루하루를 꾸역꾸역 소화해 내고 있었던가.


벌써 5년 이상 지난 과거의 일이고 당시와 지금의 나는 많은 부분에서 다른 사람이므로 쉬이 감정이 몰입되지 않는다. 하지만 덕분에 다른 방향의 표현욕이 끓어올라 이 글을 작성하기에 이르렀다.


얼마 전 계명대 국어교육과의 초청으로 강연을 다녀왔었다. 학과장 교수님께서 이런 질문을 하셨다.


"문학 교육을 받아본 적은 없으신 거죠? 재능의 영역인가요?"
"맞는 것 같습니다만 제가 읽어 온 수많은 책들이 모두 제 스승입니다. 필체도, 표현도, 전개 방식도 쓰면서 훈련하기 보다는 읽으면서 배우는게 더 빠르지 않나요?"


솔직한 대답을 드렸다. 어린 학생들의 표정에는 부러움이 스쳤지만 나는 요즘들어 여기서 내 역량의 한계에 종종 부딛히고는 한다.


이를테면 이런 것이다. 수사비평에서는 문학 작품의 구조를 내용이해의 수단으로 생각한다고. 그런데 나는 그저 내 생각을 순서대로 나열하는것 뿐이지 어떤 주제를 강조하게 위한 구조적 설계는 전혀 고려하지 않는다. 내 글을 더욱 깊게 이해하기 위하여 구조를 내용해석의 도구로 활용하려는 독자에게는 큰 혼란을 제공할 수도 있다는 이야기다.


타고난 재능만을 믿고 예술활동의 방향을 뚝심 있게 밀고 나갈 것인지, 체계적인 교육을 흡수하여 컨벤션을 따라가 볼 것인지 선택의 기로에 서 있다.


그런데 작풍 때문에 교육을 받을 생각까지는 없다. 안 그래도 내 삶은 너무나도 바쁘니까.


하지만 작품활동을 할때마다 감정을 완전히 소진하는 일을 피할 수 있다면, 회고하는 글을 지금보다 수월하게 작성할 수 있게 된다면 교육을 받아보고 싶은 욕심도 있다.


이 글을 쓰면서 미완성된 예술가로써의 자아가 불러온 파토스는 많이 쏟아냈다. 이제 정말로 강남 고시생 시절로 돌아가보려 한다. 이걸 요청한 독자가 있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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