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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킹 중 만난 따뜻한 사람들

halfbottle 2020. 5. 30. 2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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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요즘 버스킹을 하잖아."

"또 무슨 이상한 이야기를 하려고 운을 떼는거야?"

 

최근 공연 포스터

 

 

공연 중

 

밖에서 할 수 있는 취미를 찾던 중 문득 버스킹을 하고싶다는 생각이 들었고, 이왕 하는 것 어려운 사람들을 돕기로 결심했다. 그래서 3주 정도 전부터 버스킹을 다니며 소아암 환자들을 위한 후원공연을 하고 있다.

 

 

후원내역

 

장비값으로는 20만원 가량을 투자했다. 그리고 어느새 장비값을 직접 후원하는것 보다 훨씬 큰 금액을 한국소아암재단에 전달할 수 있었다. 사실은 오늘도 공연을 하려고 했으나 독감이 너무 심해서 공연을 하지는 못했다.


"이게 소아암 환우 후원이라는 슬로건을 걸어두니까 재미있는 일이 또 생기거든."

"썰 한 번 풀어봐라. 들어줄게."

"그러니까 말이지."


지루한 고속도로에서는 대화소재가 정말 중요한 법이다.


"저번주에는 혼자서 세 시간을 공연 뛰었거든? 그러다보니 정말 많은 사람들을 만났어. 가장 인상적이었던건 발달장애 아동들이 단체로 소풍을 나왔거든."

"자폐 같은거야?"

"응 맞아. 자폐아들. 애들 수십명 우르르 지나가는데 한 명 한 명 모두가 파란 조끼를 입은 선생님 손을 꼭 잡고 걸어가더라. 그런데 그 중에 몇명이 내가 되게 마음에 들었나봐. 공연중인 나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어달라고 선생님한테 졸라대는 거 있지."

"나들이도 신나는데 쿵짝쿵짝 거리는 사람 보니까 더 신났나보네?"

"그게 다 내가 너무 잘 생겨서 그런게 아닐까?"

"네 차에 커피 쏟아도 돼?"

"아니 죄송합니다 잘못했습니다. 여튼 내가 마침 재민형님 축가로도 불렀던, 연습 엄청 많이 해서 앞구르기 하면서도 부를 수 있는 곡을 부르고 있었거든. 무선마이크기도 해서 걔네한테 슥 다가가서 포즈를 같이 잡아줬어."

"애들 되게 좋아했겠다."

"응. 서로 나랑 팔짱 끼고 사진 찍겠다고 난리였어. 그 와중에도 노래는 안 끊으려고 노력했고. 관객이 걔네뿐이 아니었으니까."

"너 공연 몇 번 했다고 그새 노련함이 생겼나보네?"

"내가 아니라 관객이 먼저니까. 여튼. 걔네가 힘조절이 잘 안 되나봐. 팔을 엄청 세게 끌어안고 막 코트에서 투두둑 소리 나서 당황했는데 애들이 너무 좋아하니까. 또 사진은 오래 추억으로 남는거니까. 손가락으로 v자 해주면서 웃어줬지."

"잘했네."

"남자애들이 그렇게 단체사진 독사진 다 건져가는걸 보고 어떤 여자애가 또 소리를 지르더라고. 선생님이 당황해서 '너도 사진 찍고 싶어?' 라고 하며 난처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는거 있지. 걔는 특히 통제가 잘 안 되는 애였나봐. 사람들 많은데 소리를 얼마나 크게 질러 대던지."

"재밌네. 어떻게 했어?"

"이리와요 하면서 손 흔들어 줬더니 쪼르르 오더라. 초등학생 같아 보이던데. 어. 고목나무에 매미 달라붙듯이 내 팔에 매달리더라고. 와 근데 진짜 얘네는 힘 조절이 안 되나봐. 악력이 얼마나 강한지 성인 남성이 팔이 아파서 노래를 끊을뻔할 정도더라."

"내가 힘을 이만큼 주면 상대가 아프겠지 하는 감각이 좀 약한가?"

"그런가봐. 잠시만. 톨비좀 내자."


경차라서 톨비를 반 값만 지불할 수 있었다. 이거 하나 좋다. 2600원을 납부하고, 창문을 다시 올리고서 이야기를 이어갔다.


"나는 그냥 서서 노래 부르기보다는 이렇게 관객이랑 교감하는 쪽이 내가 더 행복하거든. 그래서 전혀 기분나쁘거나 하지 않았어. 되려 고마웠지. 근데 거기 아이들이 너무 행복해하는거야. 걔네들이 '고맙습니다'가 아니라 '사랑해요!' 라고 소리 지르더라. 엄청 멀어져서 인파에 가려서 안 보일때까지 뒤 돌아보면서 손 흔들어주더라. 사랑해요 사랑해요 외치면서."

"네가 되게 좋은 추억을 선물해 줬네."

"선물은 내가 받은 것 같아. 감정이 벅차올라서 울뻔했어."

"좋은 경험이구만."

"잠시만. 대구 운전자들은 왜 이렇게 깜빡이를 안 넣어주냐. 됐다."

"성서쪽이 길이 좀 이상해."

"인정. 고가도로를 좀 놔서 정리좀 해 주지. 아. 그리고 내가 요즘 선곡을 어떻게 하냐면 어린아이부터 백발노인까지 즐길 수 있는 곡들을 많이 넣고 있거든."

"예를 들면?"

"의외로 데이브레이크가 엄청 괜찮아. 썸 타고 싶다는 내용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70 노인들 어깨춤 추는거 볼 수 있다?"

"걔네가 곡을 정말 잘 쓰기는 해."

"응. 여튼. 한 두세살쯤 되는 애기들도 엄청 좋아하거든? 그 또래의 아이들이 할 수 있는 최상급의 감정표현은 양 팔을 위아래로 흔들면서 무릎을 까딱거리는 춤이야. 좌우가 완벽히 대칭인 춤."

"미숙한 운동신경으로 보여줄 수 있는 최고의 흥이네."

"그렇지. 애기들이 내 앞에 와서 그러고 있으면 나는 앰프 볼륨을 좀 낮춰 주지. 혹시나 너무 시끄러울까봐. 그러고 더 통통 튀게 노래를 하면서 걔네 앞에 쪼그리고 앉아서 흐뭇하게 쳐다보는걸 좋아해. 천사 그 자체야. 보고만 있어도 내가 너무 행복해지는거 있지."

"그러고 있으면 부모님들도 난리 나겠는데?"

"응. 함박웃음 지으면서 바라보거나 동영상 찍거나 하지."

"가족 전체가 좋은 추억을 남기겠구나."

"나도 그런 생각이 들어서 더 신나고 행복해져. 내가 행복을 주는게 아니라 관객한테 행복을 받아."

"크."

"그러고 애기들이랑 교감하고 있으면 소아암 문구가 더 잘 와닿나봐. 많은 사람들이 와서 후원을 해 주고 가셔. 또 중간중간에 멘트를 하거든?"

"어떻게 하는데?"

"지금 이 시간에도 많은 어린이들이 암으로 고생하고 있습니다. 오늘 날씨 되게 좋죠? 이런 바깥공기를 소아암 환우들에게도 선물해 주세요. 커피 한 잔 사 드실 돈을 보태 주시면 큰 힘이 될 수 있습니다. 저는 작은 희망이 모여 큰 기적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믿습니다. 암에 걸린 어린이들에게 내일을, 희망을 선물해 주세요!"

"오 목소리까지 그렇게 연기하면서 하는거야?"

"뮤지컬 배우 시절 배운 메소드연기지. 그런데 연기라기보다는 진심이니까. 목소리만 좀 슬프고 애절하게 연출하는거야. 근데 멘트 치고 슬픈 노래 부르잖아? 더 슬퍼진다? 그러고 슬픈 노래 중에 멘트 치잖아? 거의 울먹거리는 목소리 나온다? 같이 하는 애들이 호소력 엄청나다고 그래."

"효과가 있긴 하겠다."

"응. 노래 실력이 모자라니까. 내가 이런 노력을 조금 더하면 소아암 환자가 알약을 한알 더 먹을 수 있을지도 모르니까."

"요즘 왜이렇게 착해졌어?"

"그러게. 나도 내가 낯설다. 사람이 안 하던 일을 하면 죽을 때가 된 거라던데. 아. 그리고 어린이 동반 가족은 아이한테 돈을 쥐어주고, 애한테 저기 돈 넣고 오라고 하더라."

"사실 그게 굉장히 훌륭한 교육이거든."

"응. 소아암이 뭔지 이해할만큼 자란 친구들에게는 아마 큰 사건이 될거고, 더 어린애들은 뭐. 걔네한테 이게 어려운 사람 돕는 행위였음을 인지시키는건 부모 몫이지."

"애기들 아장아장 걸어와서 천원짜리 넣고 가는거 보면 기분 되게 묘하겠다."

"웃음이 절로 나. 가끔 박자도 놓쳐. 부모님들도 기쁜 표정으로 동영상 찍고 그래. 근데 애기들 다가올때는 천천히 다가와서 두리번두리번 거리다가 조심스럽게 돈 넣고, 돌아갈때는 뒤도 안 돌아보고 다다다닥 뛰어서 엄마한테 가더라. 애기들은 다 그래."

"낯선 경험이라 그런가보지."

"응 그럴걸. 아 이제 거의 다 왔다. 여기 주차타워가 있다던데. 아 그리고 초딩들도 쌈짓돈 꺼내는 애들 많다? 제가 열살인데 열살짜리 환자도 있겠죠? 물어보는 애가 있었어. 다섯살짜리 환자도 있다고 이야기하니까 애가 너무 표정이 심각해지는거야. 그러더니 주머니에서 동전을 몇개 꺼내서 와르르 넣더라고. '돈이 이거밖에 없어서 미안해요.' 하던데 정말 교육을 잘 받은 아이였나봐."

"그러게. 보기 드물다."

"액수가 얼마건 그게 어리건 나이가 많은 사람이건 무조건 90도로 숙여 인사하면서 감사합니다, 좋은 일 하셨습니다 복받으세요! 하고 말씀드리거든? 그 초딩 인사 받더니 울려고 그러더라. 나도 감정 벅차올라서 울뻔했잖어. 초딩은 다 악마인줄 알았는데."

"근데 초딩이 악마가 맞긴 맞거든."

"부정은 못 하겠네. 쩝. 야 너 좀 내려야겠다. 주차타워에 동승자는 진입금지네."

"오케이."


2019.11.16.대구의 모처에 방문하는 길, 친구와 차 안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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