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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쓰는 사람은 자의식이 강하대요 본문

따뜻한 글

글 쓰는 사람은 자의식이 강하대요

halfbottle 2020. 5. 30. 2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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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는 처음에 그 오빠 되게 속을 안 보여주는 사람인 줄 알았어요. 보여주는 모습은 되게 단순하잖아. 대체 그 속에 뭐가 있지? 하면서 고민했거든. 같이 놀기도 하고, 술도 먹고 친해진 것 같은데도 잘 모르겠는거에요. 그런데 독서실 같이 다니면서 알게 되었지. 그 오빠는 보이는 그대로 솔직한 사람이란 걸."

  "걔가 좀 표리동동한 사람이지." 

  "맞어."


  짠.


  잔을 가볍게 부딛힌다. 노란 맥주가 목을 건드리며 지나가는 것이 따끔따끔 시원하다. 이렇게 세 명이서 술을 먹어 보기는 또 처음이었다. 원래는 술을 먹을 생각은 없었다.
  


  "그렇게 됐어. 그래서 지금 우울해."


  카페에 모두 모여 수다를 떨고 있었다. 최근 나에게 있었던 일이 화젯거리가 되었다. 영화 시나리오로 써도 될 기승전결 완벽한 스토리다. 다들 궁금해 하기에 썰을 풀었다. 이야기가 끝날 무렵이 되니 분위기가 괜히 숙연해졌다. 괜히 이야기했나 싶었지만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하루종일 방에 틀어박혀 책이나 읽으려 했는데, 역시 친구들 만나러 나오기를 잘 했다.


  "그래, 우리 술이나 먹을까?"

  "너무 좋지."

 

  한 녀석이 어깨에 손을 올리며 이야기했다. 이 친구가 나를 위로할 때 자주 하는 말이다. 일종의 '힘들면 함께해 주겠다.'는 취지의 발언이다. 이 말 한 마디에 스트레스가 상당히 녹아 기분이 약간 좋아졌다.

 

  "병현이 오늘 술 먹는다는데?"

 

  그리고 그 자리에 있던 다른 친구는 이 이야기를 약간 다른 방향으로 들었다.

 

  "오빠 오늘 술 먹는다면서요? 같이 먹어 줄게요."

  "뭐라고?"

 

  이야기가 두 다리를 건너며 내가 오늘 술을 먹는 것이 기정사실이 되어버렸다. 어차피 집에 일찍 들어가봐야 설거지나 하고 책을 읽다 잠들 것이 뻔했으므로 자리를 마다할 이유는 없었다. 남들은 저녁식사를 시작할 시간이었다. 우리 셋은 술과 안주로 끼니를 채우기로 했다. 다른 친구들은 볼 일을 보고 합류할 것이다.

 

  "거기 레스토랑 아니에요? 예전에 돈까스 먹으러 갔는데."

  "거기 술도 팔아. 사장님이 술 팔면서 돈 맛을 보셨어."

  "얼른 가자."
  


  "평소에는 글을 자주 쓰지. 태블릿 항상 들고 다니면서."

  "맞어 얘 글 잘 쓰잖아. 인터뷰 다음편 언제 나오는데?"

  "널 인터뷰하겠다. 소재가 되어라."

  "나중에 좀 더 자리 잡으면 해줄게."

  "근데 오빠 대체 무슨 글을 쓰는 거에요?"

  "얘 뉴스 나오고 그랬어."

  "음. 설명하자면 긴데. 너 브런치 알아? 카카오에서 만든거."

  "알죠."


  브런치에 글을 써서 어그로를 끌었던 사건을 간략하게 이야기해 줬다.


  "그래서 내년에 책이 두 권 나올거야. 한 권은 아마 표지에 내 얼굴이 박혀 있을지도 몰라."

  "마 싸인해서 한 권 줘."

  "저도 주세요."

  "그래, 책은 훌륭한 냄비받침이지. 내 얼굴 있는 앞면만 쓰지 말아줘."

  "아싸 앞면에 냄비 올려야지."

  "너무해."


  두 번째 안주를 주문한다. 기본안주로 나온 마른멸치는 이미 멸종을 맞이한 지 오래다.


  "수필 말고 소설 같은거는 쓸 생각 없어요?"

  "얘 국문과다?"

  "아 진짜 국문과야? 번데기 앞에서 주름을 잡았네. 소설은 중학교때 인터넷에 쓴 적 있는데. 투데이 1위 찍고 출판사에서 연락 오고 했었어."

  "재능이 있나보네요."

  "재능은 무슨. 예전에는 나는 글을 배운 사람도 아니고, 눈에 띄는 경력이 있는 것도 아닌데 작가님 작가님 하고 불러주니까 부담스러워서 슬럼프가 왔었어. 한 달 정도 글을 한 편도 쓸 수가 없더라."

  "인터뷰도 그래서 안 올라오는거야?"

  "아니 그건 섭외할 사람이 없어서. 너네 둘 나중에 취업하면 인터뷰 해 주는거다?"

  "좋지."

  "좋아요."

 

    정규민 디자이너와 이야기를 나누며 슬럼프를 극복한 이야기를 했다. 글 이야기를 하니 시간 가는줄을 몰랐다. 최근 들어 가장 즐거웠다.


  "나는 따뜻한 글을 쓰고 싶은데 그게 잘 안 되네. 다른 사람의 감정을 이야기할 때에는 글이 참 포근하고 따뜻해진다 싶어도 내 이야기를 하면 차갑고 날카로워져."

  "원래 따뜻한 글을 쓰는게 되게 어려운 일이래요."

  "오오 국문과."

  "오오."

  "글을 쓰는 사람들은 자의식이 강해야 된대요."

  "그런 것 같아. 나도 자존감 높은 편이고."

  "아뇨 자존감보다 자의식이요. 자의식이 뚜렷한 사람은 자존감이 낮아도 그런 자신까지도 인정하고 아끼거든요."

  "음 맞는 것 같아. 근데 예술 하는 사람들이 다 그렇지 않나?"

  "그렇죠."

  "자의식이라."


  전혀 생각해 본 적 없는 이야기라 몹시 설레었다. 나도 자의식이 상당히 강한 편인 것 같다. 아니, 이 이야기를 듣고 나니 내 생각보다도 훨씬 더 강할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음 같아서는 당장 나 자신에 대한 고민을 시작해 보고 싶었지만 아쉽게도 술자리가 너무 재미있었다. 분명 다양한 이야기가 오갔는데 글에 대하여 나눈 이야기만 또렷하게 기억난다. 내가 글을 정말 좋아하긴 하나보다.


  이내 다른 친구가 또 합류했다.


  "친구 때문에 썸 터졌던 썰 들려줄게."

  "아 이거 재미있어. 들어봐."


  술이 너무 금방 떨어졌다. 술을 집어넣으니 배도 자꾸 불러온다. 몸에도 나쁜 술 다 먹어서 세상에서 없애 버려야 하는데, 큰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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