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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데스다의 기적 본문

차가운 글

베데스다의 기적

halfbottle 2020. 5. 30. 2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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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랜만에 교회를 갔다. 대학에 들어간 뒤로 몇 년 동안 교회를 안 나갔지만 최근에는 안동에서 새로운 친구들을 만나고 싶어 교회에 다니고 있다.


  교회에서 드리는 예배는 크게 세 가지 핵심 콘텐츠로 구성된다. 일반 신도들이 핵심이 되어 참여하는 콘텐츠로는 교인들의 사교적인 활동(성도의 교제)과 신에 대한 영광을 표현하는 활동(찬양 등)이 있으며, 교회에서 일방적으로 제공하는 콘텐츠로는 설교가 있다.


  설교는 대체로 성경이나 일상적인 사건, 사회적 이슈를 토대로 재미있는 이야기를 풀어나가다가 교훈을 주는 전개로 흘러간다. 고전 문학 장르인 '설'과 전개가 비슷하다. 신도들은 재미있는 이야기에 귀 기울이다가, 깊게 공감이 되는 교훈에 감동을 받고 돌아간다.

 

  성공한 대부분의 종교는 일종의 철학적인 측면에서의 장점을 가지고 있다. 종교를 믿으면 모종의 이유로 인하여 마음이 편안해지는 것이다. 좋은 종교는 타 종교인이나 무신론자가 접해도 마음의 평안을 얻을 수 있다. 이런 면모가 가장 잘 다듬어진 종교는 불교가 아닐까. 여하튼 기독교에서 이런 역할은 주로 설교가 담당한다.

 

  오늘은 설교를 듣다가 갸우뚱한 생각이 들어 글을 남겨본다.
  


  성경에 등장하는 시기의 이스라엘에는 베데스다라는 곳이 있었다. 연못으로 번역되어 들어왔지만 여러 기록들을 살펴보면 예루살렘 성 내부에 있었던 저수조로 추정된다. 당시 그 인근이 치료소로 사용되었는데 이를 위한 깨끗한 물을 저장해 둔 곳이라는 설이 유력하다고 한다. 여하튼 2천 년 전 지구 반대편에 있었던 지역에 대한 설명은 이 정도로 생략하고 신화적 이야기로 들어가 보자.


  베데스다에는 전설이 있었다. 가끔 천사가 내려와서 물을 움직이는데, 이때 가장 먼저 뛰어든 환자는 병이 낫는다는 전설이다. 용천수가 있었건 당대 예루살렘의 배관기술이 뛰어났건 간에 가끔 월풀처럼 물이 움직이는 현상이 있었을 것이다. 혹은 이 물이 온천수였고, 온천수의 효능으로 질병이 치유된 사람들의 사례가 입소문을 타고 불어났다는 이야기도 있긴 하다.


  예수가 베데스다를 방문했다. 당시 그곳에는 맹인, 절름발이, 혈기 마른 사람 등 온갖 환자들이 누워있었다. 천사가 내려와 물을 움직이면 가장 먼저 뛰어들기 위해 물이 움직이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예수는 이 중에 가장 피골이 상접한 환자에게 다가가 말을 걸었다.


  "네가 낫고자 하느냐?"


  그 환자는 그 동네에서 가장 오래된 선임 환자였다. 병에 걸려서 38년간 누워 있었고 제때 씻지 못해서 냄새가 몹시 났다고 한다. 그는 이렇게 대답한다.

 

  "물이 움직일 때 나를 물에 넣어 줄 사람이 없습니다. 내가 움직여서 물에 들어가기 전에 다른 사람이 먼저 내려갑니다."


  여기서 목사님은 이렇게 해석했다. 

 

  "눈 앞에 기적과 치유의 원천인 예수님이 있는데 어리석게도 몸을 고쳐달라고 하는 게 아니라 물에 좀 넣어 달라고 부탁했다. 그러니 38년씩이나 병을 짊어지고 있다."


  이어지는 설교는 인생과 신앙생활의 본질에 대한 이야기였다. 요약하자면 "세속적인 기준에 휘둘리지 말고, 이번 시험만 합격하게 해 달라는 등 본질적이지 않고 기회주의적인 기도를 드리지 말자."는 좋은 이야기다.


  그런데 애석하게도 나는 이 교훈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했다. 한 가지 생각이 갑자기 떠올라서.


  "근데 그 당시 평균 수명이 30살이 안 됐을 텐데?"


  과연 예수가 베데스다를 방문했을 시점인 기원후 1세기 인류의 평균수명은 얼마 정도였을까?

 

 

 

Life expectancy - Wikipedia

From Wikipedia, the free encyclopedia Jump to navigation Jump to search "Human lifespan" redirects here. For the lifespan of a person in stages, see Maturation. a measure of average lifespan in a given population Life expectancy at birth, measured by regio

en.wikipedia.org


  이런 애매한 문제는 영문 위키백과를 검색해보는 게 가장 좋더라. 위키에 따르면 기원전 4~5세기의 고대 그리스는 평균수명이 25세에서 28세 사이였을 것으로 추정되고, 기원전 8세기부터 기원후 5세기까지의 로마 제국은 평균 수명이 20세에서 30세 사이였을 것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기원후 8세기부터 15세기까지의 이슬람 황금기가 되어서야 평균 수명이 35세 이상으로 올라갔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당시 로마제국에 비해 더 뛰어난 과학기술이 있었다면 그렇게 쉽게 점령당하지 않았을 것이므로 당시의 의료기술 또한 아무리 잘 쳐 줘도 로마제국 수준이었을 것이다.


  그러니 아마 당시 이스라엘의 평균 수명은 아무리 잘 쳐 줘도 30세가 안 됐을 것이다. 25세 정도로 보자. 그런 열악한 환경에, 항생제도 발명되기 전인데 질병에 걸린 사람이 38년이나 누워 있었단다. 비위생적인 상태였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그 38년짜리 환자는 사실 알고 보면 평균수명을 아득하게 뛰어넘어 엄청 장수한 사람일 수도 있지 않을까? 태어나자마자 베데스다에 누워 있었다고 하더라도 평균수명보다 오래 살았다. 청년기에 병이 걸려서 38년간 누워있었다고 가정하면 거의 50살 가까이 산 것 아닌가? 당시 평균 수명의 두배나 산 것이다.


  그는 비위생적인 상태로 38년간 노숙했지만 정상적인 환경에서 지내는 사람보다도 오래 살았다. 이런데도 무작정 그를 어리석다고 비난할 수 있겠는가? 비록 눈 앞에 닥친 것만 보는 사람이었지만 그렇기에 끈질기게도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은 아닐까. 아니 그리 38년동안 몸이 아픈 채로 살았으면 좀 근시안적인 사고가 생길 수도 있지.


  나야 뭐 신앙적인 이유로 교회를 열심히 다니는 사람은 아니므로 이 일화가 가진 종교적인 의미를 잘은 모르겠다. 하지만 너무 그 환자를 나쁘게 보는 것 같다는 생각이 떠올라 오늘 예배는 유난히 집중하기 힘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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