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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가운 글

택배를 도둑맞아 경찰을 불렀다

halfbottle 2020. 5. 30. 2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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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약 한 달 전이었다.   롯데리아 구석 자리에 앉아서 데리버거 세트를 먹으며 핸드폰을 만지고 있었다. 그런데 카카오톡 상단 광고창에 이런 문구가 뜨더라.


  "심리상담사 1급 자격증 무료수강"


  와, 엄청 솔깃했다. 나는 사람의 심리에 관심이 많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에 굉장히 관심이 많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 생겼던 일은 역사를 보면 알 수 있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면 어떤 갈등이 벌어지는지는 법률을 보면 알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법률공부에 좋은 책이 있다. 출판사 물류창고에 화재가 발생해 종이책은 이제 재고가 없고, E북만 있다.

 

 

 

법대로 합시다

이 책은 실생활에 쓰이는 법학지식, 교양 수준의 법학지식, 법이 무엇인지 가볍게 접해 보고자 하는 사람들을 위한 교양서적의 성격을 띠고 있습니다. 경제적 풍요를 위해 재테크에 시간을 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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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이오 및 뇌공학과를 진학한 데에도 비슷한 동기가 있기 때문이다. 뇌에 대해서 공부하면 사람과 사람이 만나 생기는 일에 대해서 조금 더 잘 알 수 있지 않을까? 여튼. 그렇기에 심리학 분야에 관심도 많았는데 관련분야 자격증 교육이 무료라는 것이다. 별 고민하지 않고 수강을 신청했다.


  PDF로 된 강의자료와 인강 여러 편이 제공됐다. PDF를 훑어 보니 대충 다 한 번씩은 어딘가에서 배웠던 내용이다. 혹시나 해서 문의를 넣었다.
 


  

성격 겁나 급하다

 

  잠시 뒤 전화가 왔다. 하루만에 시험을 볼 수 있게 조치해 주시겠다고. 그래서 따로 공부하지는 않고 시험을 쳐 봤다.
  

엥?

 

  생각보다 시험이 너무 간단했다. 25개의 4지선다 퀴즈를 풀어서 60점이 나오면 자격증이 발급된다고. 어, 내 생각에는 커트라인이 너무 낮은 것 같다. 제대로 된 자격증은 교육과 시험은 물론이고 관련 학위, 상담이수 시간까지도 요구한다고 알고 있었기에. 그래도 이왕 시험 친 겸 자격증 발급을 신청했다. 한 개쯤 갖고 있으면 기분은 좋을 것 같아서 말이다.

 

  그래서 상담심리사 1, 2급 자격증과 외상심리상담사 1, 2급 자격증을 신청했다. 이게 모든 사건의 시작이었다.


  매월 16일쯤 자격증이 발송된다고 안내가 되어 있었다. 바쁘기도 하고, 별로 관심을 크게 두고 있지는 않았기에 이걸 잊어버리고 지내다가 오늘에서야 기억해 냈다. 택배가 언제쯤 도착하려나? 배송조회를 해 봤다. 그런데 뭔가 이상하다.

 

이미 일 주일 전에 배송이 완료되었다고

 

  4월 22일에 이미 배달이 완료되었다고 한다. 이상하다, 저 날 받은 택배는 단 하나도 없는데. 혹시나 해서 택배사 고객센터에 문의를 넣었다. 잠시 후 내 택배를 배달하셨던 택배기사님께 전화가 왔다.


  "그거, 제가 기억 하거든요. 노란색 봉투에 책 같은거 들어 있고, 옆 부분 찢어짖 말라고 가장자리에 테이프 더 발라져 있었어요."

  "그거 혹시 어디 두셨나요?"

  "늘 택배를 두는 곳 있잖아요? 문 앞에. 거기 뒀습니다."

  "네, 알겠습니다."


  연락 한 통도 없이 택배를 문 앞에 두고 가신건 조금 야속하지만 그래도 어쩔 수 없지 않은가. 곰곰히 고민한 끝에 112에 전화를 걸었다.


  "안녕하세요, 혹시 택배 도난도 접수 받아 주시나요?"

  "네, 주소 불러 주세요."


  한창 바쁜 시간대일텐데도 신속하게 접수를 해 주셨다.


  "거기 계세요, 지금 갑니다."

  "예, 감사합니다."


  112와 통화를 하고 나니 핸드폰에 못 보던 메시지가 떴다.

 

  [긴급통화 이후 일정 시간동안 차단된 번호로부터의 전화 수신이 가능해집니다.]


  대충 이런 내용이었다. 내가 차단해 둔 번호에서 걸려오는 전화가 차단되지 않고 그대로 걸려온다는 이야기일 것이다. 신기한 기능이 다 있었네.


  잠시 뒤에 경찰관 두 분께서 방문하셨다.


  "도난당하신 물품이 무엇인가요?"

  "자격증입니다. 심리상담사 자격증이에요."

  "택배 기사님이 물건은 어디 두고 가셨다고요?"

  "여기 문 앞입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그런데 경찰관님께서 생각지 못 했던 이야기를 하셨다.

 

  "자격증 발급처에 그 자격번호를 정지하고 재발급해달라고 요청하세요. 심리쪽 자격증이면 누가 그거 가지고 범죄 저지를 수도 있을 것 같거든요."

 

  머리가 띵했다. 나는 재미로 친 자격증이지만 그 이름이 되게 화려하지 않은가? 심리상담사 1급, 외상심리상담사 1급. 이 택배를 훔친 사람이 이 자격증을 악용한다면 충분히 범죄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마음에 상처를 받은 사람에게 접근하여 심리상담을 해 준다는 핑계로 그루밍이나 성범죄를 저지를 수도 있는 것이 아닌가. 자격증 이름도 되게 그럴싸하다보니 충분히 개연성이 있는 상상이었다.

 

  "어떻게, 절도 접수 해 드릴까요?"

  "예 부탁드립니다. 그런데 이런 가벼운 사건을 접수해도 될까요? 바쁘신 일도 많을텐데."

  "다른 범죄로 이어질 수도 있잖아요."

  "범인이 잡히면 처벌을 원하시나요?"

  "예. 처벌 원합니다."

  "그러면 여기에 처벌 원한다고 적어 주시고."  

 

  진술서를 작성하고 지장을 찍었다. 경찰관님들이 떠나시고 잠시 뒤 문자메시지가 날아왔다.

 

 

최기석 수사관님 힘 내 주세요

 

  사건이 접수되었다. 다행히 건물에 CCTV가 있으므로 좋은 결과를 기대해 봐도 될 것 같다.


  자격증 발급처에도 문의를 남겼다.

 

 

고객센터 문의

 

  할 수 있는 건 다 한 것 같다.

 

  자격증 발급 비용이 아까워서 신고한 것인데, 2차범죄는 생각지도 못했다. 심리상담을 받고자 하는 사람들은 마음에 상처가 있는 사람들일 것이다. 이들을 두 번 죽이는 그루밍이나 성범죄가 일어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란다. 민중의 지팡이, 힘 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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