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쓰는 엔지니어
고독한 공익 본문
공익생활을 시작한 이후 너무 외롭다. 안동이라는 도시에는 도저히 정을 붙일 수가 없다. 이유는 단 한가지다. 이 곳에서는 나와 겹치는 분야에서 향상심을 발휘하는 사람을 만날 기회가 없다.
서울에서 열리는 개발자 컨퍼런스에 참석하면 그런 사람들이 우글우글하다. 아무나 붙잡고 말을 걸면 대화가 된다. 대학원시절에도 마찬가지였다. 랩 형들 아무나 붙들고 커피를 한 잔 마시면 갈증을 해소할 수 있었다.
그런데 이 저주받은 도시에서는 그게 불가능하다. 나는 향상심으로 똘똘 뭉친 사람이다. 경쟁을 피하지 않으며 남들보다 조금 더 피곤하게 산다. 성취감에 중독된 사람이거든. 그러다 보니 고독하다.
나와 같은 영역에서 경쟁도 하고 고민도 나눌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하다. 노량진 공시생들이 밥만 먹고 헤어지는 속칭 밥터디(밥 + 스터디)를 하는 이유를 이제서야 공감하고 있다. 같은 고민을 공유하는 사이. 얼마나 큰 위안인가.
연구도 좋고 논문도 좋고 하다못해 수영이나 노래도 좋다. 나와 같은 영역에서 도전하며 피곤하게 살아가는 사람을 만나고 싶다. 만날 기회가 있으면 붙들어 놓고 밥도 먹고 커피도 먹으면서 투 머치 토킹 하고싶다.
어디 가서 이런 이야기를 꺼낸다고 치자.
"나 이번에 논문 쓰느라 너무 힘들었어."
보통은 갑자기 분위기가 싸해진다. 이럴때 누군가 이렇게 말해 줄 사람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힘들었겠구나. 잠은 좀 잤니? 어디 냈어? 학회야 저널이야?"
안동에서 공익생활을 한 지도 벌써 일년이 넘었다. 이미 이런 영역에 대한 기대조차 모두 내려놓은지 오래다.
향상심은 도전과 수행으로 이어진다. 혼자서 이 중압감을 감당하는건 힘들다. 그래도 이제 익숙해져버렸다. 쓴웃음이 나온다.
내가 향상심을 내려놓지 않는 한, 더 큰 노력을 계속해서 시도하는 한 나는 앞으로도 계속 고독할 것이다. 참고 살던지, 안동을 떠나던지, 내 갈증을 채워줄만한 사람을 상상텃밭에 잡아와 곁에 두던지 하는 수밖에.
나는 오늘도 외롭다. 이 외로움이 나를 잡아먹지는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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