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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과 커피에 대한 뻘글

halfbottle 2020. 5. 30. 2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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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잠을 좋아한다. 정말로 좋아한다. 인간의 삼대 욕구 중 가장 황홀하고 달콤한 것은 수면욕일 것이다.

  유신론적 견지에서는 잠은 신이 인간에게 내린 아름다운 축복이라 정의할 수 있을 것이다. 유신론적 사유에 치우치지 않고 균형잡힌 입장을 고수하기 위하여 굳이 반대진영인 무신론적 해석도 밝혀 보자면, 인류가 이룩한 최대의 업적은 바로 잠을 잘 수 있도록 진화했다는 것 아닐까. 언어와 사회성의 획득, 전기의 발견, 우주정복 따위보다 수면이라는 생물학적 기능을 쟁취한 것이 이 땅에 인간이 태어나 가장 잘 한 일이라 생각한다.


  나에게 있어 잠이 가지는 위상은 저만치도 높다.  

 

  그런데 그 존엄하고도 숭고한 행위가 방해받았다. 이게 모두 점심 무렵 커피가 함유된 음료를 한 모금 마신 탓이다.

 

  커피. 한때 참으로 좋아했다.


  한창 시를 즐겨 쓰던 시절에는 커피를 "흙을 닮은 보석"이라 은유하였다. 커피의 씁쓸한 향이 마치 부엽토 내음처럼 느껴지기도 하고 색도 비슷하니 나름 괜찮은 표현이었다 생각했던 것이다. 그만큼 커피를 즐기기도 했다. 다른 음료는 전혀 필요가 없었다. 지친 일상 속에서 나를 인스턴트 행복으로 인도하는 것은 그저 한 잔의 아이스아메리카노 뿐이었다.


  허나 커피라는 녀석도 장기간 섭취하지 않다가 먹으면 몸이 과민반응한다. 약간만 섭취해도 각성효과가 지나치게 발현되어 곤란해진다.


  얼마전 마소콘에서 코피를 쏟은 날, 그래 그 날도 거의 두 달만에 커피를 마셨었다. 오늘 낮에도 커피가 함유된 음료를 한 두 모금 마셨을 뿐인데 새벽에 가벼운 코피가 나서 잠을 깼다. 8시 무렵 잠에 들었으나 1시 즈음 깨버렸다. 그리고는 다시 잠을 들지 못 하고 있다. 잠을 숭배하는 나에게 있어 이는 굉장히도 괴로운 현상이다.


  이러나 저러나, 괴로우나 즐거우나 글쟁이에게는 항상 감정의 돌파구가 준비되어 다. 어떠한 감정이건 하얀 화면 위에 까만 색 화소들로 풀어내릴 수 있다. 어찌보면 글쟁이는 남들과는 달리 여분의 감정 저장고가 있는 셈이다. 글로써 감정을 풀어 나가다 보면 위로받고 싶고 이해받고 싶은 마음이 조금씩 글에 녹아 나오는 것이다. 글을 쓰는 중인 내가 나를 위로하고, 글을 다 쓴 내가 나를 이해하며, 훗날 다시 글을 펼쳐볼 내가 과거의 나에게 공감해 줄 것이다.


  내가 내 마음을 이해하고, 인정하고, 그걸 머릿속에서 말로써 정리하여 조심스레 내려놓는다. 이러한 일련의 행위 속에서 나는 다시 평화를 되찾는다.


  대학 1학년 시절 '수면학 개론'이라는 컨텐츠를 만들었었다. 잠에 대한 무궁무진한 가치를 다양한 과학적 관점에서 풀어 보고, 잠을 자는 동안 일어나는 신체변화를 정리한 일종의 리뷰논문이었다.

  "여러분, 잠이라는 게 이렇게 좋은 거에요."

  라는 사실을 여기저기 알리고 싶었던 마음이 크다.

  베르나르 베르베르는 잠을 시공간과 격리된 일종의 특수한 차원으로 정의한 바 있다. 그는 클라인병을 언급하며 수면을 통해 시간을 뛰어넘은 정보전달이 가능하다고 해석하며 스토리를 이어갔지만 내 생각에는 그건 좀 너무 간 것 같다. 물론 그는 뛰어난 지성인이므로 잠의 고귀한 가치를 이해하고 있었을 것이다. 잠에 대한 무궁한 경외감을 자제하지 못 하여 이러한 무리한 판타지소설 설정으로 표출한 것이라 생각한다.


  여튼 그래, 잠.


  나는 지금 잠의 폭력성을 체험하고 있다. 인간이 들판에 널부러진 식물이라는 종을 거의 지배하다시피 하면서 식량자원으로 전락시키고 만물의 영장으로 우뚝 설 수 있었던 까닭은 바로 잠을 자기 때문이다. 고로 잠을 방해받은 내가 스트레스를 받는 것은 당연한 이치일 것이다. 잠을 설치게 된 이유는 또 커피 때문이므로 분노의 화살은 커피에게 돌아가야 마땅하다. 그런데 커피는 이미 오래전부터 인류의 손아귀에서 생산력을 착취당하고 있는 형편이므로 너그러운 내가 이번 한 번만 참아 주기로 한다.


  절대로 맛있어서 용서해 주는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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