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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 종말하는 꿈 (2) 본문
깜짝 놀랐다. 전 세계 인구의 2/3이 사멸한 이 시점에서 왜 유튜브에 내 얼굴이 걸린 동영상이 돌아다니고 있는 걸까. 제목도 좀 그랬다. 영상을 클릭했다. 비장미 넘치는 음악이 흘러나왔다. 영상은 뉴스 기사에서는 요약하여 다루지 않았던 현 상황이 벌어진 경과과정을 상세하게 풀어주고 있었다. 하긴. 뉴스 기사치고 장기간 벌어진 사건을 매번 요약하며 뒷 이야기를 추가하는 경우는 본 적이 없는 것 같다.
유튜브 영상을 클릭한 것 까지 기억이 난다. 여느 꿈처럼 어느새 장면이 바뀌어 있었다. 나는 빈 침대에 걸터앉아 건너편의 황재민 형님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신기하게 영상에서 나왔던 정보는 머릿속에 잘 들어있었다.
2년 전부터 이 세상에는 백반증이라는 질병이 광범위하게 퍼져나갔다. 신체가 외부에서부터 조금씩 탄산칼슘으로 변하는 질병이다. 발병 초기에는 몸에서 비듬과도 같은 하얀색 부스러기들이 우수수 떨어진다. 조금 지나면 몸에 흰색 반점이 생겨난다. 이 반점은 만져보면 각질과도 같이 거칠거칠한 표면이 특징이다.
이 반점은 시간이 지날수록 면적이 커지며 딱딱해진다. 피부만 경화되는 것이 아니라 이 반점은 피부 속으로 조금씩 침투하여 혈관과 신경을 조금씩 잠식한다. 시간이 지날수록 감각도 둔해지고, 몸도 잘 안 움직인다. 혈관이 굳으면 피가 잘 흐르지 못하여 조금씩 신체 말단에서부터 괴사가 진행된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괴사 된 부위 역시 탄산칼슘으로 변한다. 조금씩 신체가 대리석 조각처럼 굳어가며 죽어가는 질병이다.
발병 기작도, 치료법도 밝혀지지 않았다. 언제부터 이 질병이 있었는지도 불명이다. 하지만 최근 2년 사이 프랑스를 시발점으로 하여 유럽 전역에 빠르게 백반증이 전파되었고 그게 물 건너 미국까지 전해지는 데에도 두 달이 채 걸리지 않았다. 북유럽 지역에서 월드컵이 열렸고, 바로 이듬해부터 전 세계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발병이 보고되었다. 습윤한 지역일수록 질병의 전파가 빨랐고, 건조한 지역에서는 환자의 악화 속도가 빨랐다. 인류는 진퇴양난의 선택지에 놓여 있었다. 이 와중 대한민국의 발병률이 낮았던 이유는 북한과 전쟁 중이었기 때문이다. 입국자가 적으니 질병 유입이 더뎠던 것이다.
그 와중 백반증에 대한 대책을 논의하기 위하여 남북은 종전하였고 종래의 휴전선을 복구하여 임시적인 국경으로 삼았다. 안타깝게도 북한은 중국과의 무기 거래를 통해 대량의 백반증 보균자가 유입된 상황이었다. 어쩌다 보니 남한은 전 세계에서 가장 나중에 백반증이 유입된 국가가 되었다. 그만큼 대한민국은 다른 국가의 붕괴 양상을 관망할 수 있는 아주 약간의 시간적 여유를 확보할 수 있었고 대책도 활발하게 논의할 수 있었다.
대한민국이 백반증 TF를 개설한 지 반년 차, 경상북도 안동시에서 특이한 현상이 보고되었다. 남후면 광음리에서는 백반증의 발병이 전혀 없다는 것이다. 이 정보는 비밀에 부쳐졌다. 많은 돈 많은 사람들이 남후면으로 이동할 것이며, 이 과정에서 보균자가 유입되어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정부는 철저히 비밀리에 남후면 광음리가 청정지역이 된 원인을 조사하였다. 조사 결과는 뜻밖이었다. 광음리의 공기를 분석한 결과 겨자의 매운맛을 만들어내는 글리코시놀레이트가 고농도로 측정된 것이다. 정부는 글리코시놀레이트 농도 분포를 조사하였고, 그 농도가 가장 높은 곳을 찾아가니 까만색 비닐하우스가 줄지어 있었다. 상상텃밭의 식물공장이다.
글루코시놀레이트의 효과적인 합성과 식물공장 내의 고밀도 식물군의 빠른 광합성을 위해 상상텃밭에서는 탄산칼슘을 분해하여 Yang Cycle을 가속하는 양성피드백 루프를 규명하는 데 성공했고, 이를 활용하여 열 배 매운 겨자잎 따위를 생산하고 있었다. 그 과정에서 기화된 성분이 백반증의 감염을 억제한 것이다.
이 사실을 깨닫고 대한민국 정부는 상상텃밭에 협조를 요청하기로 한다. 하지만 청와대의 지시사항이 공문으로 보건복지부에 내려가는 데 하루가 소요되었고, 보건복지부 주무관이 공문을 수신하고 과장의 결재를 받는 데 이틀이 걸렸으며 안동지청에서 공문을 다시 남후 면사무소에 등기우편으로 발송하는 데에는 추가로 삼일이 소요된다. 하지만 하루 동안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다니는 집배원의 업무 특성상 안동우체국에 백반증이 빠르게 확산되어 업무가 마비되었고 결국 공문은 유실된다.
정부에서는 한 달이 지나도 상상텃밭측의 회신이 없자 동일한 공문을 재발송한다. 하지만 이번에 안동지청에서 중요한 사실을 깨닫는다. 상상텃밭은 농업회사법인이므로 농림축산식품부 소관이라는 점을. 그래서 다시 절차가 롤백된 다음 청와대에서 농림축산식품부로 공문을 내려보낸다. 이런 의미 없는 우편 하달 절차를 거치는 사이 서울시 인구의 20%가 백반증 진단을 받는다.
상상텃밭 임원들은 본인들이 대한민국에서 가장 안전한 사람이라는 사실을 추호도 모른다. 언젠가는 백반증에 노출될 것임을 염려해 미리 유서를 쓰고 신변 정리를 시작했다. 회사는 매각되었고, 임원진은 엑싯을 통해 수백억 원을 챙기고 존엄한 죽음을 맞이하기 위해 가족들과 함께 잠적한다. 남후면사무소 공무원이 농림부로부터 공문을 받아 현장실사를 나오고서야 이 사실이 정부에 알려진다.
이미 상상텃밭 사무실의 모든 서류는 소실된 상태이므로 상상텃밭의 글리코시놀레이트 기술을 확보하는 것이 불가능한 상황이 되었다. 정부는 이 사실을 공식적으로 발표하며 상상텃밭 출신 임원진들의 도움을 요청하는 광고를 내보낸다.
나는 산속에 지은 집에서 이 광고를 보고 소스라치게 놀라 자진 출두했다. 내가 가진 기술이 어쩌면 인류를 구할 수 있을지도 모르지 않는가. 이민우 이사와 황재민 이사도 함께 출두했다. 나머지 멤버들은 연락이 닿지 않았다. 아마 이미 죽었을 가능성이 클 것이다. 이민우 이사와 황재민 이사는 얼굴 일부가 하얗고 퍼석하게 변해 있었다. 나는 오른쪽 다리 일부가 그런 상태였다. 식물공장을 접고 나니 우리도 백반증 증상을 피해 갈 수 없게 된 것이다.
우리는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기울여 상상텃밭 기술을 재현했다. 광화문광장 주변 지역에 식물공장이 설치되었고 인근 지역에서는 백반증 진행이 느려졌다. 이제 기기를 계속 복제해 전국에 설치하면 해결될 것 같았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기술의 핵심 코어는 우리가 만들면 30% 확률로 제조에 성공했고, 다른 사람이 만들면 매번 실패했다. 무언가 말로 전달이 어려운 노하우가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오랜 밤샘으로 우리들의 몸은 점점 악화되고 있었다. 나는 드디어 오른쪽 다리가 움직이지 않게 되었다. 소아마비 환자처럼 한쪽 다리를 질질 끌면서 출근했다. 이 속도로는 전국을 커버하는 것보다 우리가 쓰러지는 게 먼저일 것 같았다.
대한민국 정부는 이에 중대한 결정을 내린다. 글리코시놀레이트 기술이 적용된 저온 챔버를 만들어 우리를 저온 수면상태로 만들고, 그동안 밖에서는 기술 복제를 연구하겠다는 것이다. 복제 가능성이 확보되면 그때에 우리의 수면상태를 중단할 테니 그때부터는 구현이 아닌 대량생산을 위한 노력을 기울여 달라고 했다. 우리는 그 제안을 수락했고 철도 위에 장치된 챔버에 들어가 누웠다. 이 챔버는 저온으로 유지되는 데다가 가속도를 받으면서 초고속으로 이동하여 상대성이론에 따라 시간이 느리게 흐른다고 했다. 몸에 장치를 주렁주렁 달고 누워서 눈을 감았다.
여기까지의 정보가 이미 머릿속에 들어있었다. 역시 꿈 속이라 그런지 전개가 다이내믹하다. 다리를 내려다봤다. 눈으로 봐서는 백반증 증상이 보이지 않는다. 손으로 만졌을 때 겨우 감각이 약간 둔해졌음을 느낄 수 있었다. 황재민 이사와 이민우 이사는 콧등과 이마 쪽에 약간 하얀 부스럼 같은 것이 붙어 있었다. 백반증 증상이 예전보다는 조금 완화된 것 같았다.
배가 고팠다. 이 공간 안에는 먹을 것은 전혀 없는 것 같았다. 아무래도 밖에서 우리를 꺼내 주기 전에 우리가 먼저 일어날 상황은 상정하지 않았던 것 같다.
일단은 저 둘을 깨우지 않기로 했다. 나는 모종의 이유로 먼저 일어났지만 덕분에 생리적 욕구를 느끼고 있었다. 식량과 자원이 필요해졌다. 저들은 자고 있는 동안에는 식량이나 물이 따로 필요하지 않을 것 같았다.
내가 먼저 깨어나게 된 이유를 밝혀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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