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쓰는 엔지니어
도를 아십니까? 돈은 잘 아는데요. 본문
방금 있었던 일이다.
안동 시내에서 아침부터 문 여는 헤어샵 찾아 해메던 중이었다.
"저기요, 공덕이 많으신데 말씀좀 들어보세요."
우리 아버지뻘 되는 아저씨가 말을 걸어 오신다. 이런 포교활동이 어떤 비즈니스모델을 가지는지 세세하게는 잘 모르겠으나 나는 지금 몇 달째 자르지 못 한 머리를 한시바삐 잘라내고 정수리 펌을 해 빈약한 머리숱을 숨기고 싶은 마음 뿐인지라 그냥 지나쳐 보려 했다. 그런데 문득 호기심이 들었다.
'내가 전문 포교인한테 말빨로 이길 수 있을까? 아냐 쉽게 질 것 같지도 않은데?'
그렇게 어느쪽도 얻을 게 없는 고독한 승부가 시작되었다.
"제가 공덕이 많긴 하죠. 제가 공덕을 어떻게 쌓아 왔는지 궁금하지 않으세요?" "네?"
그 분은 몹시도 당황하셨다. 한 2초가량 말이 없으시길래 계속 입을 놀렸다.
"오늘 어르신을 만난 것도 다 공덕을 쌓기 위한 인연이 아닐까요. 좀 더 이야기 나누어 보죠." "아... 그럴까요?" "네 좋아요, 저기 카페로 갑시다."
그 분은 표정에서 의아함을 감추지 못 하셨다. 하지만 제 발로 이야기를 들어봐준다니 일단 나를 놓치고 싶어 하지는 않는 것 같았다.
"감사합니다. 커피는 제가 살게요."
"아뇨 제가 사드리려구요. 신발이 많이 낡으셨네요. 혹시 노후준비는 어떻게 하고 계세요? 건물이 있으시거나 공무원이신가요?"
"아니요.. 노후 준비 까지야 뭐. 아직 젊으니까..."
정말로 당황하신게 느껴졌다.
"큰일날 말씀입니다. 노후준비는 적어도 20년은 시간을 쌓아올려서 하는 거에요. 저는 벌써 준비중인걸요."
"아 그런데 혹시 나이가 몇살이세요?"
"스물 일곱입니다. 혹시 어르신은요?"
"어.. 제 나이는 뭐.. 중요한 게 아니고... 혹시 조상님 중에.."
목소리를 키우며 말을 끊었다.
"중요하지 않다니요! 그러시면 나중에 고생합니다. 얼른 들어오세요 제가 기가 막힌 방법들을 소개해드리겠습니다."
아저씨의 소매를 잡고 투썸플레이스쪽으로 질질 끌고 갔다. 저항이 심하다.
"아.. 아니 그 이제 등 뒤에 조상님이 계시는데 노하신 것 같아."
"제 걱정은 나중에 하시구요, 어르신. 조상 귀신보다 노후가 더 무서운겁니다. 저만 믿으세요. 자 들어갑시다."
"아 아니.."
당황한 사이 카페로 입장시키는 데 성공했다.
"따뜻한걸로 한 잔 고르세요. 요즘 노후는 스마트팜이 대세에요. 연금 받으면서도 수혜 받을 수 있고. 2억원만 넣으면 매년 따박따박 수익이 나거든요."
"아 학생 아냐 나 가볼게"
"가보기는요 안 돼요 제가 이대로 어르신을 놓치면 조상님이 노하실거에요. 제가 꼭 도와드릴게요. 얼른 커피부터 고르세요."
그 아저씨는 몇 초 지나지 않아 뒤도 안 돌아보고 카페를 뛰쳐나갔다.
도팔이 위에 사기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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