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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 종말하는 꿈 (1)

halfbottle 2020. 5. 30. 2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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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창 기분 좋은 꿈을 꾸고 있었던 것 같다. 한기가 느껴져 잠이 깼다. 잠에서 깼다고 바로 눈을 뜰 수는 없는 노릇이다. 몸을 한껏 웅크린 채 옆으로 돌아눕는다. 아직 알람이 울리기 전이니 조금만 더 여유를 즐기고 싶었다. 운 좋게 다시 잠들 수 있다면 더 좋고. 그런데 잠을 이어가기가 힘들었다. 꽤 큰 소음이 규칙적으로 들려왔다. 피부를 간지럽히듯 큰 소음이.


  덜컹, 덜컹.


  내가 잘 아는 소리다. 무슨 소리일까? 그래, 기차다. 기차 소리가 틀림없다. 기차가 달릴 때 선로와 바퀴가 부딪히며 나는 그 소리다. 그런데 우리 집 근처에 기찻길이 있었나? 내가 상상텃밭 근처 논두렁에 꼬구라져 자고 있는 것이 아니라면 이건 꿈일 것이다.


  어차피 꿈 속이면 더 자려고 노력하지 않아도 되겠다. 생각이 거기까지 미치니 눈을 떠도 될 것 같았다. 알록달록한 그래프가 잔뜩 그려진 모니터가 눈에 들어왔다. 한쪽 벽면 전체에 벽걸이 모니터 수십 대가 설치되어 있었다. 급하게 설치한 것 같다. 선 정리가 되지 않아 굵은 전선들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었다. 위쪽 모니터에서 내려온 전선이 아래쪽 모니터 화면을 일부 가리기도 했다. 대체로 수평도 맞지 않았다. 누가 설치한 것인 지는 모르겠지만 굉장히 마음이 다급했던 것 같다.


  상체를 일으키고 주위를 둘러봤다. 열 평 남짓 되어 보이는 공간이었다. 공간 내부는 생각보다 밝았다. 네모나고 하얀 공간이다. 정면에는 흰색 암막커튼이 달려 있었다. 그 너머에 창문이 뚫려 있는 것 같다. 나는 보라색 시트가 깔린 이상하게 생긴 침상에 누워 있었다. 마치 바이올린의 몸통처럼 생긴 부드럽게 굴곡진 형태였다. 팔다리에는 전선이 연결된 전극이 잔뜩 연결되어 있었다. 한쪽 다리에만 스무 가닥 이상의 전선이 매달려 있었다. 전극은 언젠가 사용한 적 있는 3M 사의 제품인 것 같았다. 내 왼쪽으로는 똑 같이 생긴 침상 두 개가 더 놓여 있었다.


  모니터를 바라보며 몸을 조금씩 움직여 봤다. 가운데쯤 있던 모니터의 그래프가 요동치고 있다. 저 모니터에 나온 그래프가 내 몸에서 나온 정보임에 틀림없다. 술을 마신 다음날 같이 온몸의 근육이 시큰거린다. 왼팔에 연결된 전선을 거칠게 잡아 뜯는다. 전극의 접착면이 가루가 되어 바스러진다. 원래 되게 촉촉하고 젤리 같은 재질인데. 상당히 오래전에 부착된 것 같다. 완전히 말라 있다. 천천히 온몸에 붙은 전극을 하나씩 제거했다. 피부에 회색 가루가 들러붙어 불쾌했다. 몇 번 손으로 비비니 조금씩 떨어져 나간다.


  추웠다. 자다가 깰만하다. 천천히 일어나 모니터 화면을 둘러본다. 대부분의 모니터가 세 사람의 생체신호를 보여주고 있다. 나머지 몇 개는 까만 화면이 떠 있었다. 잘 둘러보니 구석에 마우스와 키보드가 있었다. 까만 창을 클릭하고 명령어를 하나 입력했다.


  > ipconfig

 

  놀랍게도 이 컴퓨터는 인터넷과 연결되어 있었다. 그리고 OS가 윈도우다. 조금 더 컴퓨터를 만지다 보니 인터넷 익스플로러를 찾을 수 있었다. 한국인의 기상으로 네이버로 들어갔다. 메인 페이지에 광고가 하나도 없었다. 이상했다. 오늘자 뉴스를 확인한다.


  - 사망자 50억 명 도달.


  "엥? 이게 뭐야?"


  당황해서 기사에 적힌 오늘 날짜를 확인했다. 2022년 4월 1일. 다른 기사를 클릭한다.


  - 탐사대, 남반구에서 생존자 발견 실패
  - 적도 및 저위도 지역 사망자 급증
  - [칼럼] 하지만 국민연금 재정 건전성은 올랐다
  - 내란 종식, "일단 힘을 합쳐서 살아남자."
  - 혈액형 성격론 사실로 밝혀져, "B형 남성 99%, A형 피 수혈받는 데 두려움 느껴" 학계 떠들썩
  - KAIST 원자력공학과 학생들, 정지된 원전에 무단 침입하여 원전 재가동 성공. 한반도 전역 전력공급 원활.
  - 정부, 물자 배급을 위해 고속도로 통제
  - 올해 대한민국 신규 출생신고 2만 건 돌파, "희망의 불씨가 꺼지지 않았다."
  - 구글, 아카이브 프로젝트 출범, "인류의 지식을 영구히 보존하자."
  - 대한민국, 아직 사망자 52%에 불과 


  대충 지구가 반쯤 종말 했다는 이야기로 들렸다. 주변을 좀 더 둘러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많은 국가가 기능을 완전히 정지했다. 스마트팜 연구에 집중적인 투자를 한 국가들은 그래도 사망자 수가 비교적 적은 편이라고 한다. 인터넷을 통해 좀 더 정보를 확보하고 싶었지만 지금 내가 있는 공간에 대한 궁금증이 더 컸다. 아직도 기차가 철길을 달릴 때 나는 '덜컹덜컹' 하는 소음이 계속 들려온다.


  내 옆에 누워 있던 두 사람을 살펴보기로 했다. 방이 너무 추워서 입김이 나온다. 팔을 비비며 옆에 있던 침상으로 다가간다. 맨 발이라 발바닥이 몹시 시렸다.

 

  두 사람 모두 굉장히 잘 아는 사람이었다. 내 왼쪽에 누워 있는 사람은 상상텃밭의 황재민 형님이고, 그 옆에 있는 사람은 상상텃밭의 이민우 이사였다. 두 사람 모두 숨을 쉬지 않는 것 같았다. 아니, 굉장히 느리게 숨을 쉬고 있었다. 황재민 이사의 어깨를 툭툭 두드리며 모니터를 주시했다. 오른쪽 상단에 있는 모니터에서 그래프가 살짝 요동쳤다. 주위를 둘러보니 마침 보드마카가 눈에 들어온다. 보드마카를 이용해 모니터에 '황'이라고 적었다.

 

  이렇게 두 사람의 어깨와 팔다리 근육 등을 조금씩 건드리며 모니터를 확인했다. 뇌파와 근육의 움직임 따위가 측정되고 있었다. 뇌파는 학부 졸업 이후 처음 보는 거라 기억이 가물가물했다. 대충 잠을 자고 있겠거니 생각하기로 했다. 혈압은 아주 낮았고 심장도 매우 느리게 뛰고 있는 것 같았다. 두 사람을 깨워도 되겠는지 판단이 서지 않았다. 갑작스레 깨우면 안 될 것 같다. 일단 그대로 두기로 했다.

 

  커튼을 열었다. 시골 풍경이 휙휙 빠르게 넘어간다. 덜컹덜컹 소리가 계속 나고 있다. 아마 나는 달리는 열차 속에 있는 것 같다. 햇빛이 들어오니 조금 포근해진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그대로 열어두기로 했다.

 

  조금 더 정보를 얻기 위해 다시 인터넷을 켰다. 유튜브를 켰다. 여전히 유튜브에는 재밌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았다. 세계가 종말을 맞이하고 있는 데에도 먹방을 찍고, 코미디 영상을 찍어 올리는 사람들이 있다. 진정한 프로정신이다. 스크롤을 내리다 보니 눈길을 끄는 영상이 있었다. 썸네일에 내 사진이 있었다.

 

  - 상상텃밭 기술은 정말 복제가 불가능한가?

 

  "x발, 뭐야 이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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