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쓰는 엔지니어
죽음의 택시와 살아남은 대학원생 본문
이 이야기가 페이스북에 무사히 포스팅된다면 나는 다행스럽게도 이 목숨을 잃지 않고 지켜낼 수 있었다는 뜻이리라.
대전역을 가기 위해 궁동에서 택시를 탔다.
"학생, 나는 빨리 가야돼 무조건 빨리"
무슨 말씀을 하신건지 확 와닿지 않아 잠시 벙 찐 사이에, 스프린터마냥 무서운 속도로 택시가 승강장을 빠져나갔다. 그간 보x드림 등 인터넷 커뮤니티에서나 구전되던 전설의 구아방 제로백을 몸으로 느껴볼 기회가 생길 줄이야. 갑작스러운 행운에 나도 모르게 속으로 중얼거렸다.
'빨간불이었는데... x됐다...'
대한의 건아로써 용기를 쥐어짜 겨우겨우 안전벨트를 착용할 수 있었다. 어느새 기사양반은 유성구청 앞까지 속력을 줄이지 않은 채 차선 사이를 요리조리 닷지하며 앞서가는 차들에게 쌍욕을 퍼붓고 있었다. 내가 운전할 때 동승했던 친구들과의 대화가 갑자기 생각났다.
"승객의 목숨을 내 목숨처럼 아끼는 드라이버다."
"내 목숨 파리목숨 취급 받기 싫은데?"
어느덧 이 지옥의 전차는 둔산동 한 가운데를 시속 140키로미터 속도로 가로지르고 있다. 이 순간 차로 위는 두 종류의 사람으로 나뉜다. 뒤에서 쫓아오는 한 마리 야생 아반때에 치일까 급히 간격을 넓히는 앞차와, 재앙이 지나갔음을 안도하며 내가 탄 택시를 욕하고 있을 뒷차들.
기사 아저씨는 세상에 불만이 많으시다. 정치 종교부터 시작해 우리나라에도 통금 시간을 강제해야 하는거 아니냐는 하나도 알아먹지 못 할 이야기들을 흥분한 어조로 자꾸 뒤를 돌아보며 쏟아내신다. 도로교통법을 준수해달라는 말씀까지는 못 드리겠지만 제발 앞을 보며 운전해달라고 소리치고 싶었다. 허나 이 질주귀의 심기를 거스르면 더욱 흥분해 뒤를 돌아보는 빈도가 증가할 것 같으므로 20여년간 갈고닦은 맞장구 솜씨를 십분 발휘해야 한다.
아주 착한 학생이라며 사탕 한 웅큼을 집어 몸소 뒤를 돌아보시며 전해주신다. 지금은 아까보다는 속력이 많이 내려가 시속 120키로에 지나지 않는다.
멀리 대전역이 보인다. 아니다 멀리가 아니었다. 그 사이 대전역 길 건너 횡단보도에 도착해 이 죽음의 상자 속을 탈출했다.
아아. 나는 오늘도 살아남았다. 생명의 소중함에 감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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