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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누구나 소중한 존재다. 생명이라는 거룩하고도 숭고한 선물을 손에 쥐고 있는 짧은 기간 동안, 우리는 숨을 쉬고 살아간다는 것만으로도 아름답다. 우리는 모두 사랑받을 자격이 있다.
따라서 필자는 함부로 사람의 가치를 깎아내리거나 타인에게 상처를 입히는 행동을 좋아하지 않는다. '나' 만큼이나 다른 사람들도 소중하고 귀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간혹 필자와는 굉장히 다른 노선을 걷는 사람들을 만나곤 한다. 되도록이면 마찰을 피하는 것이 좋지만, 그런 부류의 사람들이 꼰대력까지 갖추고 찾아온다면 갈등을 피하기가 쉽지 않다.
필자가 가장 싫어하는 부류의 사람은 타인의 노력이나 전문성을 인정하지 않는 사람이다. 앞서 인간은 굉장히 숭고하고 소중한 존재라 언급하였지만, 만약 그와는 정 반대로 존재 자체가 해악이며 사회적 효용이 마이너스인 사람이 존재한다면 그게 바로 이런 사람들이다.
필자가 어린 나이에 깨달은 사실이 하나 있다.
"살면서 한 번도 세상에 기여해 보지 못 한 사람일수록 쉽게 타인을 무시한다."
여기서 무시란 다양한 형태로 발현된다. 오늘은 그중 타인의 노동이 가진 가치를 굉장히 낮게 보는 형태에 대해 이야기를 해 보려 한다. 이들은 타인의 역사를 부정하는 사람이며, 인간의 존엄을 해치는 자들이다.
필자의 이야기가 언론에 소개되면서 필자에게 빨대를 꽂아 보려는 사람이 굉장히 많이 등장했다. 사실 청와대에서 필자를 불렀던 것도 활용가치가 있었기 때문이다. 상세한 내용은 책에 적었다.
열정 페이에 대처하려면 우선 자신의 몸값을 아는 것이 중요하다. 내 가치가 최저시급인지, 시급 5만 원인지, 시급 30만 원인지를 명확히 하는 것이 첫 번째다. 그다음은 더 쉽다. 그 기준보다 낮은 금액의 오퍼는 무조건 거절하면 되는 것이다.
여하튼 필자의 기준에는 전혀 성에 차지 않는 대가를 제시하면서 무언가를 해 주길 바라는 사람들이 많았다는 이야기이다.
어차피 복무 중엔 돈도 못 받으니까 재미가 있어 보이는 데다가, 시간을 적게 들여도 되는 일이라면 어지간하면 요청을 승낙해 준 편이다. 심심할 때 들어온 부탁일수록 더 잘 들어준다. 국방부 시계가 빨리 돌아가면 좋지 않은가. 공익적인 목적으로 자문을 요청하는 경우에도 어지간하면 승낙하는 편이었다.
단, 투입시간이 많이 필요한 부탁은 무조건 거절했다.
이렇듯 금전적인 요건은 아주 내려놓고 지내는데도 필자의 생각에 "이건 열정 페이다."싶은 제안들이 많았다. 썰을 풀어 보지 않을 수가 없다.
이미 민간인이 되어 글을 작성하고 있는 오늘까지도 모종의 부탁을 받았다. 생각보다 사회복무요원 한 명에게 큰 기대를 갖고 계신 분들이 적지 않아서 놀랐다. 이제는 민간인이니 당당하게 돈을 얼마나 주실 수 있는지 물어봤다.
컨택 경로 또한 다양하다. 빈도가 높은 순서대로 정리해 보자면 아래와 같다.
1위 노동청의 직통전화로 필자에게 바로 전화를 주는 경우가 가장 흔하다. 필자가 가장 선호하던 루트이기도 하다.
2위 안동 노동청으로 바로 전화나 공문을 넣는 경우. 절차상 가장 바람직하고 간소한 루트다. 어차피 필자에게 직접 연락이 닿더라도 많은 경우 노동청으로 다시 연락하여 공무원을 설득하는 과정이 필요하며, 위에서 허가가 떨어져야 필자가 움직일 수 있다.
3위 브런치의 "문의하기"기능을 활용하는 경우. 필자의 이메일로 문의 내역이 전달된다. 노동청의 업무와 전혀 상관없는 영역일 경우 가장 좋은 컨택 루트다. IT 자문이나 기고문의 등 필자의 복무 범위와 무관한 용무인 경우에는 노동청의 허가가 필요 없다. 게다가 필자는 거의 실시간으로 메일을 확인하는 편이다.
4위 SNS를 통한 경우. 기관에서는 사례가 없고 민간 쪽에서는 빈도가 잦다. 사생활을 간섭받는 기분이 들기 때문에 필자가 가장 싫어하는 루트다.
5위 구글링을 통해 신상을 털어서 연락을 주는 경우. 회사 이메일이 아마 쉽게 검색이 되는 모양이다. 구글 스콜라에 회사 메일로 등록해 뒀었나?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회사 메일로 온 연락 중 터무니없는 건들은 무시하고, 나머지는 무조건 회사에 대한 문의로 간주해서 다른 멤버에게 맡긴다.
필자는 열정 페이를 굉장히 싫어한다. 이는 한 사람이 가진 가치를 폄하하는 행위다. 필자에게 일을 시키면서 정당한 대가를 지불할 의사가 없는 기관이나 사람은 필자가 지금껏 쌓아온 노력과 경력을 무가치한 것으로 간주하는 악당이다. 거기에 동조하면 필자 또한 공범이 되는 것이고, 그 피해는 필자 본인뿐 아니라 동종업계의 다른 전문가들에게 돌아가게 된다.
가장 간명한 해결책은 업계 평균 수준의 보수를 받는 것이다. 하지만 필자는 사회복무 중이었므로 어떠한 금전적 이득을 취할 수 없는 상태였다. 이런 특수한 상황 때문에 재미있는 일이 벌어진다.
필자에게 정당한 대가를 꼭 지불하고 자문을 구하고 싶었던 모 정부기관은 병무청과 전화통화로 언성을 높여 싸웠다고 한다. 또 어떤 기관에서는 "어차피 대가를 받을 수 없는 데 공짜로 해 주시죠."라는 이야기를 했다. 전자의 경우에는 복무관리규정을 피해 퇴근 후 또는 휴가 중에 짬을 내 무료로 자문을 해 드렸고, 후자의 경우에는 "복무관리규정의 업무분야를 벗어난 범위이므로 먼저 병무청에 문의하여 서면 허가를 받아 오십시오."라는 답변을 드렸다. 이럴 때 병무청은 참 좋은 방패다.
필자도 나름대로 당시 상황에 타협해 "대가"에 대한 새로운 기준을 세웠다. 재미가 있는 일이거나, 보람찬 일이거나, 사회적 약자에게 힘이 될 수 있는 일이면 충분한 대가를 받은 것으로 생각하기로 했다. 단, 시간이 오래 걸리는 일은 절대 안 한다.
2019년 1월 17일. 한 통의 이메일이 날아왔다.
이 이메일을 받고 한동안 멍해졌다. 와, 어디서부터 문제를 지적해야 할 지 모르겠다.
일단 이 메일은 필자의 회사 메일로 온 것이다. 브런치에 필자의 개인용 이메일을 연동해 뒀는데 굳이 회사 이메일을 이용한 부분에서 일단 살짝 기분이 상했다. "가게 정문을 개방합니다. 한 분씩 줄 서서 들어오세요." 하는 상황에서 뒷 문 열고 카운터 안으로 들어온 고객을 마주하는 기분이었다. 근데 뭐, 그럴 수는 있다. 급하면 말이다. 그런데 말이다. 코드를 봐 달라고 하는데 화질이 깨져서 도저히 읽을 수가 없다. 그런데 이 부분은 이해할 수 있다.
일반인들 중에서 DPI나 해상도 개념을 잘 모르는 분들이 많을테니 사진 화질이 깨진 것 쯤이야 이해할 수 있다. 모르면 그럴수도 있지.
그리고 마지막, 세 번째 문제는 예의가 없다. 사실 이게 문제다. 다른 문제들은 충분히 타협 가능한 문제다. 말투가 조금만 더 예의발랐어도 기분이 상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 저게 생판 모르는 사람에게 부탁하는 사람의 태도인가? 버르장머리가 없다. 다른 표현이 떠오르지가 않는다. 존댓말을 사용하고는 있지만 필자를 완벽히 아랫사람으로 인지하고 있는 것 아닌가.
병무청에서 실제로 필자의 자문행위를 지적한 적 있다. 다시 생각해도 열 받네. 공익이 공익적 일 하는데 불만이 뭐 이렇게 많아. 여튼 병무청이 전화통화로 입장을 밝혀 줬으므로 그것을 인용해 병무청 핑계를 대며 거절하는 것이다. 물론, 얼마든지 합법적으로 자문 해 줄 수 있는 방법들이 많다. 많은 분들께 이렇게 자문을 해 드렸고.
그래도 이 분은 양반이다. 다짜고짜 직통전화로 전화를 걸어서 이것 저것 물어보는 사람들도 많았다. 반말 찍찍 뱉는 것은 기본이고.
"어, 거기 반병현 공익요원 있습니까?"
"본인입니다."
"어, 그래요. 뭐좀 물어보려고. 그 이번에 뉴스 나온 사람 맞지?"
"근데요?"
"어 그 혹시 이번에 우리가 뭘 정리할 게 있는데, 사람 이름별로 물품을 좀 정리해야 하는데 엑셀로 정리하거든. 이거도 자동화 할 수 있니?"
"당연히 가능하지."
"아 진짜? 그거 좀 해 줄래? 내가 이메일로 파일 보내줄게."
"싫은데."
"뭐?"
"싫다고. 끊는다."
실제로 있었던 대화다. 너무 화가 나서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 얼탱이가 없어서 전화기에 찍혀있는 발신번호를 메모해 놨다. 클라우드에 백업도 해 놨다. 당연히 구글에 직통전화를 검색도 해 봤다. 요즘은 세상이 좋아져서 직통전화를 검색하면 어느 관공서에 근무하는 누구인지 바로바로 알아볼 수 있다. 사람들이 기본적인 예절은 좀 지키면서 살면 좋겠다. 공무원 시험 과목에 기초예절 과목은 안 집어넣나?
2019년 초였나 2018년 말이었나.
1층 민원실의 조정관님께서 휴가를 쓰신 관계로 민원인 문의전화를 대신 받아주기 위해 필자가 1층에 투입되었다. 필자는 노동법은 거의 아는 바가 없지만 민원인의 이야기를 들으면 그 전화를 누구에게 연결해 주면 될 지 정도는 대충 견적을 낼 수 있었다.
그날 아침에는 노동청의 좁은 주차장에 엄청나게 큰 츄레라가 와 있었다. 중요 기록물을 폐기하기 위한 차량이라고 했다. 몇 건의 민원 전화를 받아서 돌려 줬다. 아무래도 실업급여와 임금체불 문제가 가장 수요가 많은 민원이더라. 오전 11시경이었다.
"병현아, 본부에서 오신 분이 뵙고 싶으시다는데 잠깐 시간 있지?"
"네, 물론이죠. 고용서비스 기반과에서 오셨나요?"
"아니, 이분은 ㄱ 과에서 오셨어."
부서명을 그대로 공개하고 싶은데 솔직히 기억이 안 난다. ㄱ로 시작한다는 사실만 기억이 난다.
"아 반갑습니다. 사무관 xxx 입니다."
"반갑습니다. 반병현입니다."
당시 여기저기서 도움을 구하는 요청을 받고 있었기에 이번에도 그런 부탁이겠거니 지레짐작했다. 이왕 공공의 이익을 위하는 공익근무요원으로 근무하고 있으니 어지간하면 무료로 자문을 해 드리려고 나름 속으로 마음먹고 있었다. 그리고 이 생각은 3분만에 바뀌었다.
"저희가 이런 것을 만들고 싶거든요."
"아 그러시군요. 그러면 그런걸 잘 만드는 업체를 연결해 드릴까요? 아니면 견적이 얼마정도 할 지 궁금하신거에요?"
"아, 그게 아니라요. 혹시 이런거 만들어 주실 수 있으세요?"
"뭐, 어렵지 않긴 한데요."
"아, 그러면 만들어 주시는 건가요?"
"아뇨, 그런건 아니고요. 이게 제 복무의무를 넘어서는 지시거든요. 혹시 대가는 어떤 식으로 지불하실건가요?"
"예?"
"말씀하신 내용 민간에 발주 넣으시면 못해도 억대에요. 제가 만든다 쳐도 만드는데 돈도 들어가고, 퇴근 후에도 야근 해야 겨우 만들텐데. 얼마 생각하고 오신거에요? 제가 공익이라 돈은 못 받거든요. 생각하신 방법이 있으세요?"
"아, 저희는 대가나 비용은 생각을 안 해 봤고요. 해주실 수 있는 건 맞죠?"
"물론 하려면 할 수 있죠. 그런데 제 의무를 넘어서는 거잖아요. 대가 없이는 안 합니다."
"그런데 일과시간에도 이렇게 코딩 하실 여유는 있으시죠?"
"물론 그렇긴 하죠. 그런데 대가 없이는 안 합니다."
"아 그러시면 같이 이거 만들어 보실 여유 있으신거죠?"
"대가 없이는 안 한다니까요?"
"그 돈은 못 받으신다면서요?"
"그럼 민간에 발주 넣으시면 되죠. 추가수당도 못 받는데 제가 왜 야근까지 하면서 그런거 만들어 드립니까?"
"어, 그래도 공익 하시면서 IT업무 하시면 이력도 되잖아요."
"저 그런 이력 필요 없는데요. 기분이 좀 나쁘네요. 제가 민간인이었으면 지금 이렇게 자문해 드리는것도 30만원은 받아야 되거든요?"
"음 그래도 그러면 시간적 여유는 되시는거죠?"
"대가 없이는 안 한다니까요?"
의미 없는 실랑이가 이어지는 바람에 민원인들의 전화도 두 통이나 못 받았다. 아, 다시 생각하니까 또 열받네.
태도가 조금만 예의발랐어도 후딱 만들어 줬을지도 모른다.
반면 정상적인 분들도 굉장히 많다. 필자를 조금만 사람 취급 해 주고 예의를 갖춘 분들께는 간 쓸개 다 빼 줬다. 뭐 더 도와줄 수 있는 게 없을지 고민하기도 했었다. 그중 가장 기억에 남는 분들은 노동부 고용서비스 기반과 분들과 의왕시청 분들이다. 이 분들은 사전에 미리 필자에게 연락을 해서 일정을 조율했으며, 매번 존댓말을 써 줬고, 필자를 한 명의 전문가로써 인정하고 대접해 줬다. 여기서 필자는 큰 감동을 느꼈다. 공노비를 사람 취급 해 주다니.
고용서비스 기반과는 이미 수차례 언급했으니 여기서는 생략하겠다.
의왕시청의 요청은 "사회적 약자에게 혜택이 돌아가도록 하는 일"이라는 판단이 들어서 기꺼이 승낙했다. 앞으로도 가능한 한 도움을 많이 드리고 싶다.
해결하고자 하는 문제가 지엽적이고 명확하게 정의된 상태여서 더욱 좋았다. 먼저 공공기관용 입찰을 전제로 한 견적을 내어 드리고, 필자가 발주를 줘야 하는 상황이라 가정하고 기능과 가격을 대폭 타협한 견적을 한번 더 내어 드렸다. 그리고 가능하다면 국가행정의 혁신을 민간 쪽에서, 그것도 스타트업 쪽에서 주도하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카이스트 창업원을 소개해 드렸다. 스노우볼이 잘 굴러가 줄까? 필자가 조금 더 도움을 드리고 싶었으나 필자의 역량이 부족한 탓에 충분히 도와드리지 못 한 것 같아 아쉽게 생각한다.
이외에는 특이 케이스도 있는데, 도와주려는 사람도 도움을 요청한 사람도 답답해지는 케이스다. 고용노동부의 이름 기억 안 나는 모 부서, 인천 고용복지+센터(노동청 산하기관), 이름 기억 안 나는 모 시청, 이름 기억 안 나는 모 기업 등지에서 등기우편 자동 정리 프로그램을 사용할 수 있는지 문의가 들어왔다.
파이썬을 알아야 쓸 수 있으므로 일반인은 사용이 어렵다고 말씀을 드려도 재차 요청하시기에 깃허브 링크를 보내 드린다. 그러면 십중팔구 아래와 같은 일이 벌어진다.
이런 상황에서는 필자도 답답하고, 도움을 요청한 곳에서도 굉장히 답답할 것이다. 공식적으로 자문이나 강연을 안동노동청에 요청하셨더라면 필자가 방문을 해서 설치도 도와드리고 사용법도 알려드렸을텐데, 그 정도까지 절박한 분들은 안 계셨다.
"이거 왜 못 쓰게 되어 있어요?"
순수한 마음에 이렇게들 질문을 하시면 필자는 이렇게 대답한다.
"그 엔진을 일반인이 손쉽게 사용할 수 있게 가공하는 데에는 돈과 시간이 필요합니다. 혹시 민간에 발주 넣어서 가공하고, 그거 전국 관공서에 배포하실 생각 있으세요?"
그건 또 싫다고들 하신다. 하하.
여하튼. 제목이 조금 자극적이긴 하지만 필자가 모든 공무원을 싫어하는 것은 아니다. 그저 사람 취급을 받고 싶었을 뿐이다. 약간이라도 예의라는게 있었던 분들은 최대한 도와드리기 위해 애썼다고 생각한다.
이 외에도 억울했거나 화 나는 일들이 정말 많았지만 이제는 그냥 추억으로 묻어두려고 한다. 대한민국에서 이런거 일일이 다 고했다가는 끝이 없으리라는 사실을 모두가 알고 계실 것이니.
2년간 쌓아 온 분노는 여기에 모두 내려놓고 싶다. 분노는 자기 자신까지 집어삼키는 감정이니까. 여기에 더이상 발목 잡히고 싶지 않다. 폭로할 건 폭로했으니 이제 후련한 마음으로 내일을 향해 달려나가기만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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