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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쓰는 엔지니어
필자가 글을 쓰는 과정을 글로 남겨 보고 싶다는 생각이 갑자기 들어 의식의 흐름에 손을 맡기기로 했다. 일반인을 위한 업무 자동화 시리즈에 글을 쓰지 않은 지 한 달이 넘어간다. 그간 아이디어가 부족하기도 했고, 새로운 고민거리가 생겼기 때문이다. 아직 도장은 안 찍었지만 IT교과서를 잘 만들기로 유명한 생능출판사와 이런 저런 이야기가 오가고 있다. 정말 맛있는 밥도 얻어먹었다. 처음에는 단행본으로 이야기를 주고 받았지만 대학교에서 필자의 책이 교재로 사용되면 좋겠다는 욕심이 생기고 있기도 하고. 이 연장선에서 어떻게 하면 독자들에게 정말로 도움이 되는, 책 한 권 샀을 뿐인데 삶의 질이 높아질 수 있는 그런 글을 쓸 수 있을지 고민을 하고 있다. 그러다보니 글 한편 올리기까지 더욱 시간이 많이 걸린 것..
오랜만에 교회를 갔다. 대학에 들어간 뒤로 몇 년 동안 교회를 안 나갔지만 최근에는 안동에서 새로운 친구들을 만나고 싶어 교회에 다니고 있다. 교회에서 드리는 예배는 크게 세 가지 핵심 콘텐츠로 구성된다. 일반 신도들이 핵심이 되어 참여하는 콘텐츠로는 교인들의 사교적인 활동(성도의 교제)과 신에 대한 영광을 표현하는 활동(찬양 등)이 있으며, 교회에서 일방적으로 제공하는 콘텐츠로는 설교가 있다. 설교는 대체로 성경이나 일상적인 사건, 사회적 이슈를 토대로 재미있는 이야기를 풀어나가다가 교훈을 주는 전개로 흘러간다. 고전 문학 장르인 '설'과 전개가 비슷하다. 신도들은 재미있는 이야기에 귀 기울이다가, 깊게 공감이 되는 교훈에 감동을 받고 돌아간다. 성공한 대부분의 종교는 일종의 철학적인 측면에서의 장점을..
내가 먼저 깨어난 원인은 생각보다 쉽게 찾을 수 있었다. 창 밖으로 보이는 풍경은 KTX 수준이었다. 상대론이 명함을 내밀 수 있는 속도 범위가 아니다. 당연히 초기 의도와는 많은 괴리가 발생했다는 뜻일 것이다. 아까 본 뉴스 내용이 문득 떠올랐다. - KAIST 원자력공학과 학생들, 정지된 원전에 무단 침입하여 원전 재가동 성공. 한반도 전역 전력공급 원활. 이 말인즉슨 한반도는 한때 전력공급에 차질을 겪었다는 뜻 아니겠는가. 그 여파로 무언가가 잘못된 것 같았다. 이 방 내부가 서늘한 편이긴 하지만 인체 내부의 물질대사가 확연히 느려질 수준은 절대 아닌 것 또한 같은 이유에서일 것이다. 그렇다면 옆에 누워 있는 저 두 사람 역시 조만간 깨어날 가능성이 커 보였다. 방 안에는 식량도 물도 없기 때문에 ..
깜짝 놀랐다. 전 세계 인구의 2/3이 사멸한 이 시점에서 왜 유튜브에 내 얼굴이 걸린 동영상이 돌아다니고 있는 걸까. 제목도 좀 그랬다. 영상을 클릭했다. 비장미 넘치는 음악이 흘러나왔다. 영상은 뉴스 기사에서는 요약하여 다루지 않았던 현 상황이 벌어진 경과과정을 상세하게 풀어주고 있었다. 하긴. 뉴스 기사치고 장기간 벌어진 사건을 매번 요약하며 뒷 이야기를 추가하는 경우는 본 적이 없는 것 같다. 유튜브 영상을 클릭한 것 까지 기억이 난다. 여느 꿈처럼 어느새 장면이 바뀌어 있었다. 나는 빈 침대에 걸터앉아 건너편의 황재민 형님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신기하게 영상에서 나왔던 정보는 머릿속에 잘 들어있었다. 2년 전부터 이 세상에는 백반증이라는 질병이 광범위하게 퍼져나갔다. 신체가 외부에서부터 조금씩 ..
한창 기분 좋은 꿈을 꾸고 있었던 것 같다. 한기가 느껴져 잠이 깼다. 잠에서 깼다고 바로 눈을 뜰 수는 없는 노릇이다. 몸을 한껏 웅크린 채 옆으로 돌아눕는다. 아직 알람이 울리기 전이니 조금만 더 여유를 즐기고 싶었다. 운 좋게 다시 잠들 수 있다면 더 좋고. 그런데 잠을 이어가기가 힘들었다. 꽤 큰 소음이 규칙적으로 들려왔다. 피부를 간지럽히듯 큰 소음이. 덜컹, 덜컹. 내가 잘 아는 소리다. 무슨 소리일까? 그래, 기차다. 기차 소리가 틀림없다. 기차가 달릴 때 선로와 바퀴가 부딪히며 나는 그 소리다. 그런데 우리 집 근처에 기찻길이 있었나? 내가 상상텃밭 근처 논두렁에 꼬구라져 자고 있는 것이 아니라면 이건 꿈일 것이다. 어차피 꿈 속이면 더 자려고 노력하지 않아도 되겠다. 생각이 거기까지 미치..
"그 사람 만나보니 어땠어?" 아침 수영 후의 샤워실. 상상텃밭 류동훈 이사가 샴푸 거품을 덕지덕지 묻힌 채로 이야기했다. 그 모습을 보고 있으니 문득 어린 시절 크리스마스 트리에 솜을 뿌려 장식하던 게 생각나 기분이 좋아졌다. 거품이 마치 소복이 쌓인 눈 같다. 어린 시절부터 몽글몽글하고 포근한 솜을 참 좋아했다. 잠시 고민하고 이야기했다. "소금 안 친 곰국 같은 사람이었어." "그게 무슨 소리야?" "말 그대로야. 소금 안 친 곰국은 싱겁기는 한데 못 먹을 정도는 아니지. 그렇다고 느끼하지만 그렇게까지 불쾌하지는 또 않아. 밥을 말기에는 좀 더 짜면 좋겠지만 그렇다고 또 맛이 없지는 않고. 니맛도 내맛도 아닌것 같으면서도 깊은 풍미는 또 있어. 근데 또 같이 곁들이는 짠 반찬의 맛은 살려주는 것 같..
금요일 저녁이었다. 불과 이틀 전 실연을 겪은 터라 짙은 상실감에 젖어 하루를 보냈다. 주말이 다가오면 바리바리 짐을 꾸려 장거리 운전을 했었다. 그런데 이제는 그럴 필요가 사라졌다. 갑자기 시간이 많아지니 당황스러웠다. 책을 읽고 싶어졌다. 내 필체의 뿌리가 된 책을 리디북스에서 검색했다. 56권 연재 중. 아직까지도 완결이 나지 않았다. 내가 중학교 시절 처음 접한 책인데! 작가분께서는 아마 빌딩을 올리셨을 거다. 출판사는 이 책 덕분에 사옥을 새로 지었겠지? 금요일 밤이다. 오늘 뭐라도 하지 않으면 주말 내내 아무것도 하지 못할 것 같다는 불안감이 들었다. 여유가 불안으로, 불안이 강박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오늘의 나는 예민하구나. 스스로에게 조심해야겠다. 쓸 데 없는 생각을 하다 보니 점점 퇴근시..
"우리는 처음에 그 오빠 되게 속을 안 보여주는 사람인 줄 알았어요. 보여주는 모습은 되게 단순하잖아. 대체 그 속에 뭐가 있지? 하면서 고민했거든. 같이 놀기도 하고, 술도 먹고 친해진 것 같은데도 잘 모르겠는거에요. 그런데 독서실 같이 다니면서 알게 되었지. 그 오빠는 보이는 그대로 솔직한 사람이란 걸." "걔가 좀 표리동동한 사람이지." "맞어." 짠. 잔을 가볍게 부딛힌다. 노란 맥주가 목을 건드리며 지나가는 것이 따끔따끔 시원하다. 이렇게 세 명이서 술을 먹어 보기는 또 처음이었다. 원래는 술을 먹을 생각은 없었다. "그렇게 됐어. 그래서 지금 우울해." 카페에 모두 모여 수다를 떨고 있었다. 최근 나에게 있었던 일이 화젯거리가 되었다. 영화 시나리오로 써도 될 기승전결 완벽한 스토리다. 다들 ..